중국에게 밀리는 국가전략기술
어마무시한 역전 속도
반도체조차 안전지대 아니다

지난 24일, 산업연구원이 발표한 충격적인 보고서가 산업계를 술렁이게 했다. 한국이 국가전략기술 50개 분야 중 중국보다 우위를 점하는 분야가 단 6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불과 4년 전인 2022년만 해도 17개 분야에서 앞서 있었던 것을 고려하면, 역전의 속도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 수출의 20~30%를 차지하는 반도체 산업조차 안전지대가 아니다.
메모리 반도체에서는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AI 칩 설계와 반도체 설계 플랫폼 등 비메모리 분야에서는 이미 중국이 우위를 점한 것으로 평가됐다.
산업연구원은 지난해 9월 실시한 전문가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한·중 양국의 산업 밸류체인 전반을 종합 비교해 이같은 결론을 내렸다.
1.2년으로 좁혀진 기술 격차, 추격 속도는 2배

구체적인 수치는 더욱 심각하다. 2024년 기준 한국과 중국의 기술 격차는 1.2년에 불과하다. 참고로 한국과 미국의 기술 격차는 2.6년이다.
더 우려스러운 점은 격차 축소 속도다. 한국은 2022년 이후 미국과의 격차를 0.4년 줄이는 데 그쳤지만, 중국은 같은 기간 한국과의 격차를 0.8년이나 단축했다. 추격 속도가 2배 빠른 셈이다.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분야에서는 이미 중국이 0.7년 앞서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AI 산업 규모 격차는 더욱 압도적이다. 중국의 2025년 AI 산업 매출은 1조 2000억 위안(약 252조원)으로, 한국과의 격차가 약 30배에 달한다.
산업용 로봇 분야에서도 중국은 핵심 부품인 감속기와 서보시스템의 국산화율을 50% 이상 달성하며 독자 생태계 구축에 성공했다.
로봇·전기차·배터리, 밸류체인 전체에서 중국 우위

분야별 분석 결과는 더욱 충격적이다. 산업용 로봇의 경우 제품 개발 및 설계 등 R&D 역량에서는 한국이 근소하게 앞서지만, 부품 조달 능력과 대량 생산, 해외 시장 창출 능력에서는 중국이 모두 우위를 차지했다.
특히 청소·서빙 등 서비스 로봇 분야에서 중국은 글로벌 점유율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전기차 역시 사후 유지보수와 서비스 부문에서만 한국 기업이 경쟁력을 유지할 뿐, 자율주행 분야에서는 중국이 전반적으로 앞선 것으로 분석됐다.
로봇, 전기차, 배터리, 자율주행차 등 미래산업 전 분야에서 중국이 밸류체인 전체에 걸쳐 우위를 점하고 있는 셈이다.
“구조적 경쟁 단계 진입”… 프리미엄 시장 전략 필요

조은교 산업연구원 중국산업분석팀장은 “한·중 산업 경쟁은 이제 단순한 기술 추격 단계를 넘어 산업 생태계와 공급망, 시장을 포함한 구조적 경쟁 단계로 진입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한국은 초격차 기술 확보와 함께 중국의 산업 생태계를 전략적으로 활용해 새로운 제조 경쟁력을 축적하는 방향으로 산업전략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한국에도 기회가 남아 있다고 분석한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 시장에서는 여전히 품질과 신뢰성을 중시하며 한국 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 첨단 소재·부품 분야에서 축적된 기술력도 중요한 강점으로 꼽힌다.
산업연구원은 AI 시대에 맞는 독자적인 ‘K-제조 모델’을 구축하고, 신뢰를 기반으로 글로벌 공급망을 선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최병호 고려대 휴먼인스파이어드 AI연구원 연구교수는 “미국과 중국이 ‘규모의 경제’ 싸움을 하는 상황에서 한국의 전략은 산업 엔지니어링 최적화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라며 프리미엄 시장 집중 전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시장에서는 메모리 반도체와 첨단 소재·부품 분야의 기술 우위를 바탕으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개발이 시급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