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연금을 많이 받을수록 좋다는 통념이 있다. 그러나 연금저축과 IRP(개인형 퇴직연금)에서 돈을 꺼내는 순간, ‘연 1,500만 원’이라는 숫자가 과세 방식 전체를 바꾸는 분기점이 된다.
연 1,500만 원, 어디서 어떻게 계산되나
해당 기준은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이 아닌 연금저축(펀드·보험·신탁)과 IRP 같은 사적연금 수령액 합계에만 적용된다. 복수의 계좌에서 조금씩 받더라도 해당 연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수령한 금액을 모두 합산해 판단한다.
이 합계가 연 1,500만 원 이하이고, 납입 기간 5년 이상·만 55세 이후 연금 형태로 수령하는 조건을 충족하면 나이에 따라 3.3~5.5%의 저율 연금소득세가 적용되며 과세가 종결된다. 구체적으로는 55~69세 5.5%, 70~79세 4.4%, 80세 이상 3.3%로 나이가 높아질수록 세율이 내려가는 구조다.
1,500만 원 넘으면 무조건 불리한가
연간 사적연금 수령액 합계가 1,500만 원을 초과하면 그 해 수령액 전체에 대해 16.5% 분리과세 또는 종합소득세 신고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연금 외 소득이 거의 없는 은퇴자의 경우 각종 공제를 감안하면 사적연금 수령액이 연 9,000만 원대에 이를 때까지도 종합과세가 16.5% 분리과세보다 세 부담이 낮은 사례가 많다는 것이 세무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반대로 근로·사업·임대소득이 이미 상당한 경우에는 사적연금 소득을 합산하면 35~45%대 고세율 구간에 진입할 수 있어 16.5% 분리과세가 유리해지는 구조가 된다. 결국 1,500만 원 초과 여부보다 ‘다른 소득이 얼마나 남아 있느냐’가 실질 세 부담을 결정하는 핵심 변수다.
‘세금 폭탄’ 프레임과 실효세율의 괴리
2024년 세법 개정 이전까지 사적연금 저율 분리과세 한도는 연 1,200만 원이었다. 정부는 고령층 세 부담 완화와 사적연금 활성화를 명분으로 이 기준을 연 1,500만 원으로 상향했다. 시장에서는 이 기준선을 ‘피해야 할 경계’가 아니라 ‘정부가 저율 과세로 보호해 주는 상한선’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분석한다.
실효세율 측면에서도 ‘폭탄’ 표현과 현실 사이에는 괴리가 있다. 세무·연금 전문가들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다른 소득이 없는 은퇴자가 사적연금만으로 연 5,000만 원을 수령할 때 실효세율은 10% 안팎, 연 8,000만 원 수준에서도 15% 내외에 그친다는 계산이 다수다. 한편 일시금으로 인출하거나 세법상 연금 수령 한도를 초과해 받을 경우에는 세액공제를 받은 납입 원금과 운용수익 전체에 기타소득세 16.5%가 부과되기 때문에, 인출 방식의 선택이 세 부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인출 설계가 수익률보다 먼저다
같은 IRP 계좌 안에서도 회사에서 받은 퇴직금과 본인이 세액공제를 받으며 추가 납입한 금액은 과세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어느 돈을 먼저 인출하느냐에 따라 세금이 달라진다. 부부가 각각 연금계좌를 보유한 경우, 한쪽에 수령액을 몰아주는 것보다 각자 1,500만 원 안팎으로 나눠 받는 방식이 세 부담 분산에 유리하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조언이다.
세무·재무 전문가들은 연금 수령 시점에서 세금 최소화만을 목표로 수령액을 억제하면 생활비 부족이나 고금리 부채 사용으로 전체 재무 상태가 오히려 악화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시장에서는 세금표와 생활비표를 동시에 놓고 소득이 적은 연도에 연금 수령액을 늘리고, 의료비 지출이 큰 해에는 예금으로 대응하는 식의 유연한 인출 전략이 필요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