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가 꼽은 암의 ‘양대 주범’

암 진단을 받는 순간 무력감에 빠지기 쉽지만, 세계보건기구(WHO)의 최신 분석은 예상 밖의 희망을 제시한다. 2022년 전 세계에서 발생한 암의 37%는 예방 가능한 원인과 연관돼 있다는 것이다.
이는 약 710만 건의 암이 생활 습관 개선이나 의료 개입으로 막을 수 있었다는 의미다.
WHO와 국제암연구소(IARC)가 185개국 36종의 암을 분석한 이 연구는 전 세계 암 사망자가 2020년 1천만 명을 넘어선 상황에서 발표되었다.
2040년까지 신규 암 환자가 50%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는 가운데, 예방 가능한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가장 실질적인 대응책으로 떠올랐다.
WHO 의학역학자 이사벨 소에르조마타람 박사는 “예방 가능한 원인을 해결하는 것이 전 지구적 암 부담을 줄이는 가장 강력한 기회”라고 강조했다.
담배와 음주, 예방 가능 암의 양대 주범

연구에서 확인된 30가지 위험 요소 중 담배 흡연이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전체 암의 15%, 남성 암의 23%가 담배와 연관돼 있었다.
이는 전 세계 암 사망의 약 3분의 1이 흡연 때문이라는 뜻이다. 2020년 폐암으로만 180만 명이 사망했는데, 대부분 흡연과 대기오염이 원인이었다.
흡연 다음으로 음주가 전체 암의 3.2%(약 70만 건)를 차지했다. 담배와 술, 단 두 가지 생활 습관만 개선해도 전체 암의 18% 이상을 예방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번 연구는 최초로 9가지 암 유발 감염을 포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전체 암의 10%가 감염과 연관돼 있었고, 특히 여성의 경우 고위험 인유두종바이러스(HPV)로 인한 자궁경부암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HPV 백신이 이미 존재하지만 많은 지역에서 접종률이 낮다는 점은 정책적 개입의 여지를 보여준다.
지역별 편차가 보여주는 사회경제적 불평등

예방 가능한 암의 비율은 지역과 성별에 따라 큰 차이를 보였다. 남성의 경우 동아시아가 57%로 가장 높았고, 중남미 및 카리브해는 28%로 가장 낮았다.
여성은 북아프리카·서아시아가 24%로 가장 낮고,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가 38%로 가장 높았다.
이러한 편차는 단순한 개인의 생활 습관 차이가 아니라 국가의 예방 정책, 보건 시스템 역량, 환경 규제 수준을 반영한다. 예를 들어 동아시아 여성 폐암의 15%는 대기오염이 원인이었고, 북아프리카·서아시아 남성 폐암의 20%도 대기오염과 연관돼 있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치료 접근성의 격차다. 고소득 국가에서는 90% 이상이 포괄적 암 치료를 받을 수 있지만, 저소득 국가에서는 15% 미만에 불과하다. 예방 메시지만으로는 이러한 글로벌 의료 불평등이 오히려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백신과 정책으로 막을 수 있는 미래

WHO는 이번 분석을 바탕으로 맥락별 예방 전략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강화된 담배 규제, 음주 규제, HPV 및 간염 B 백신 캠페인 확대, 대기질 개선, 안전한 작업 환경 조성이 핵심이다.
WHO 암 관리팀장 앙드레 일바위 박사는 “국가와 개인에게 더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하여 많은 암 사례를 발생 전에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위암의 경우 헬리코박터 필로리 감염과 연관돼 있어 2020년 76만 9천 명이 사망했는데, 이는 상수도 시설, 위생 개선, 감염 관리 같은 시스템적 개입으로 줄일 수 있다.
미국에서는 암 생존율이 이미 70%라는 이정표를 달성했다. 조직화된 예방과 치료 시스템이 작동할 때 암은 더 이상 불치병이 아니라는 증거다.
암의 37%가 예방 가능하다는 이번 연구 결과는 개인의 실천과 사회적 개입이 만날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담배를 끊고 절주하는 개인의 노력만큼이나, 백신 접종률을 높이고 대기질을 개선하며 의료 접근성을 확대하는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 예방 가능한 710만 건의 암을 실제로 막아내기 위해서는 보건, 교육, 환경, 노동 부문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