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2·K9로 34조원 수출한 최대 고객
잠수함만큼은 스웨덴 A26 선택
발트해 특화 설계가 결정적 변수

폴란드는 한국 방산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다. 2022년부터 지금까지 K2 전차, K9 자주포, FA-50 경전투기 등을 잇달아 구매하며 누적 계약액만 34조원을 넘어섰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한국 방산 수출에서 폴란드가 차지하는 비중은 46%로, 2위 필리핀 14%를 압도한다.
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은 NATO 본부에서 한국산 무기를 두고 “불과 몇 개월 안에 공급할 수 있는 굉장한 최신 무기”라고 극찬했다.
그러나 8조원 규모의 잠수함 사업에서는 다른 결과가 나왔다. 폴란드 국방장관은 27일 스웨덴 사브의 A26 블레킹급 잠수함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한화오션을 비롯해 독일 티센크루프마린시스템, 이탈리아 핀칸티에리, 프랑스 나발그룹 등이 참여한 ‘오르카 프로젝트’ 경쟁에서 스웨덴이 최종 승자가 됐다.
한국 정부가 해군 첫 잠수함 장보고함까지 무상 양도하기로 결정했음에도 역부족이었다.
34조원 방산 수출의 핵심 파트너

폴란드가 한국 방산의 최대 고객으로 떠오른 배경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있다.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대거 지원하면서 자국 전력에 공백이 생겼다.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이 고조된 상황에서 신속한 전력 보강이 절실했고, 빠른 납기와 검증된 성능을 갖춘 한국산 무기가 최적의 선택지였다.
2022년 7월 체결된 기본계약에 따라 폴란드는 K2 전차 1000대, K9 자주포 672문, FA-50 48대, 천무 다연장로켓 288문 등 4종 무기체계를 구매하기로 했다.
1차 계약 규모만 124억달러에 달했으며, 이후 2023년 K9 자주포, 2024년 천무 2차 계약을 순차적으로 맺었다.

올해 7월에는 K2 전차 2차 계약을 체결하며 개별 방산 수출계약으로는 사상 최대인 약 9조원 규모의 계약을 성사시켰다.
K2 2차 계약의 특징은 현지 생산이 포함됐다는 점이다. 180대 중 117대는 현대로템이 생산해 공급하지만, 나머지 63대는 폴란드 국영 방산그룹 PGZ가 현지에서 생산한다.
폴란드형 K2 전차 개발과 생산시설 구축이 포함되면서 1차 계약 4조5000억원의 두 배에 달하는 계약 규모가 확정됐다.
방사청은 현지 생산 거점 구축이 총괄 계약에 포함된 K2 전차 1000대 물량에 대한 후속 계약의 이행 가능성을 높인 것이라고 평가했다.
잠수함은 발트해 특화가 관건

그러나 잠수함 분야에서는 한국의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만으로는 부족했다. 폴란드 국방장관은 스웨덴이 모든 기준과 납기, 특히 발트해에서 작전 능력 측면에서 가장 좋은 제안을 했다고 설명했다.
발트해는 수심이 얕고 복잡한 해저 지형을 가진 특수한 작전 환경이다. 스웨덴의 A26 블레킹급은 바로 이 발트해 작전에 최적화된 설계로 개발됐다.
스웨덴은 단순히 잠수함 판매에 그치지 않고 폴란드 조선소에 잠수함 정비 능력을 갖추도록 투자하겠다고 제안했다. 또한 폴란드산 휴대용 대공미사일과 구조함 등을 구매하는 절충교역도 약속했다.
유럽 국가 간 산업 협력과 기술 공유를 중시하는 EU의 분위기 속에서 이러한 제안은 큰 설득력을 가졌다.

한국도 막판 지원에 나섰다. 지난 9월 안규백 국방장관이 폴란드를 방문해 국방장관을 설득했고, 10월에는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전략경제협력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폴란드를 찾았다.
올해 말 퇴역 예정인 장보고함을 무상 양도하기로 결정하고 최근 폴란드에 친서를 보냈다.
장보고함은 1988년 독일에서 건조를 시작해 1991년 진수했으며, 림팩 2004에서 10만톤급 핵항모를 포함한 30여척을 가상 격침시키며 뛰어난 성능을 입증한 한국 해군의 상징적 존재다.
EU 재무장 정책이 높은 벽

더 근본적인 문제는 EU의 방산 정책이었다. EU 집행위원회는 올해 3월 ‘유럽 재무장 계획’을 발표하면서 역내 방산기업을 우대하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바이 유러피언’으로 불리는 이 정책은 2030년까지 5년간 8000억유로를 투입해 회원국의 무기 보유를 늘리는 것이 골자다.
이 과정에서 EU는 1500억유로 규모의 저리 대출을 지원하는데, 이를 받으려면 총 무기 생산 비용의 65%에 달하는 부품을 EU 역내에서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정책 환경에서 스웨덴의 현지 생산과 기술 이전 제안은 폴란드에게 훨씬 매력적이었다.
반면 한국은 이미 K2 전차로 현지 생산 모델을 성공시켰지만, 잠수함은 전차나 자주포와 달리 첨단 기술이 집약된 무기 체계로 기술 이전과 현지 생산의 난이도가 훨씬 높다.

장기적인 유지보수와 기술 지원도 필수적이어서 지리적으로 가까운 유럽 국가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했다.
방산 전문가들은 한국이 전차와 자주포, 다연장로켓에서는 빠른 납기와 가격 경쟁력으로 승부할 수 있었지만, 잠수함은 작전 환경 특화와 유럽 내 산업 협력이라는 변수가 더 크게 작용했다고 분석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번 결정에도 불구하고 폴란드와의 방산 협력을 유지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폴란드는 현재 NATO 회원국 중 GDP 대비 국방비 지출 비율이 3.9%로 최상위권이며, 트럼프 행정부가 5% 수준까지 증액을 요구하면서 향후 추가 방산 수요가 계속 발생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