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보다 카드값이 더 빨리 늘어난다”
소득 늘어도 가계 경제는 ‘빨간불’

“요샌 월급날이 기대되지 않아요.”
서울에 거주하는 직장인 김모 씨(42)는 10년 전보다 연봉은 확실히 올랐지만, 통장에 남는 돈은 오히려 줄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식비, 공과금, 보험료, 아이 교육비까지 감당하고 나면 다음 달 카드값을 걱정하게 된다”며 “오히려 돈 쓸 일만 늘어난 기분”이라고 말했다.
비단 김 씨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국민소득은 10년 새 18% 가까이 늘었지만, 지출은 그보다 두 배 넘게 증가하면서 체감 소득은 오히려 줄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득보다 지출 증가폭 더 커… “벌어도 남는 게 없다”

통계청이 26일 발표한 ‘2024 한국의 사회지표’에 따르면,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2014년 3만798달러에서 2023년 3만6624달러로 18.9% 증가했다.
반면 1인당 민간소비지출은 같은 기간 1649만4000원에서 2387만원으로 44.7% 급증했다.
문제는 소득 상승폭보다 지출 증가폭이 훨씬 가파르다는 점이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그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2019년 1975만2000원이던 1인당 연간 소비지출은 2023년 2315만8000원으로 17.2% 증가했다.

지난해 원화 기준 1인당 GNI가 약 5000만 원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절반 가까이를 소비로 쓴 셈이다.
가구당 월평균 소비지출도 289만원으로 전년 대비 9만8000원 늘었다. 주요 지출 항목은 음식·숙박(15.5%), 식료품·비주류 음료(14.3%), 주거·수도·광열(12.2%), 교통(11.6%) 등이다.
40대 가구주의 소비지출이 가장 높았고, 이어 50대, 39세 이하, 60세 이상 순으로 나타났다.
한 경제전문가는 “급여는 오르지만 지출 구조가 더 빠르게 팽창하고 있어 체감 소득이 줄고 있다”며 “이런 추세가 지속되면 중산층의 소비 여력도 줄어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식비 비중 30% 넘는 저소득층… 고물가에 더 취약

지출 부담이 더 큰 계층은 단연 저소득층이다. 특히 먹거리 물가 상승은 저소득 가구에 더 큰 타격을 주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지난 2월 한국의 식료품·비주류 음료 물가 상승률은 6.95%로 OECD 평균(5.32%)보다 높았다.
이는 2021년 11월 이후 2년 3개월 만에 주요국 평균을 다시 넘어선 수치다.

이처럼 물가 상승이 이어지는 가운데, 지난해 2분기 기준 소득 하위 20% 가구의 식비 지출은 월평균 41만원으로, 전체 소비지출(125만2000원)의 32.8%를 차지했다. 1년 전(31.1%)보다 늘어난 수치다.
소득 하위 40% 가구도 식비 비중이 31.8%로 전년보다 상승했다. 반면 중산층 이상 가구는 식비 비중이 감소하는 양상을 보였다.
한국은행이 같은 날 발표한 ‘2월 생산자물가지수(잠정)’에서도 농산물과 수산물 가격이 각각 3.6%, 1.0% 상승하면서 장바구니 물가 부담이 이어지고 있다.
4월에도 줄줄이 인상… 먹거리 값 상승 ‘현재진행형’

이러한 가운데, 4월에도 주요 식음료 업체들이 제품 가격을 인상하면서 서민들의 부담은 계속될 전망이다.
남양유업은 내달부터 초코에몽, 과수원사과 등 음료 제품 가격을 12~14% 올릴 예정이며, 매일유업은 치즈·두유 등 51개 품목의 가격을 평균 8.9% 인상한다.
빙그레는 ‘따옴오렌지’와 커피 음료 가격을 최대 12.5% 인상했고, 오뚜기도 진라면, 열라면 등 라면류와 즉석식품 가격을 일제히 올렸다.

아이스크림 브랜드 하겐다즈도 파인트 제품 가격을 1만7900원으로 올리는 등 전반적인 물가 상승 흐름이 멈추지 않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원재료비, 물류비, 인건비 등 복합적인 비용 상승 요인이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앞으로도 인상 기조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 중산층 축소와 소비 위축 등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또 “소득은 오르지만 구매력이 줄어드는 이른바 ‘소득 착시 현상’이 확대되고 있다”며 “정부는 실질 소득을 끌어올릴 수 있는 정책과 함께 가계 부담 완화를 위한 물가 안정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