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이어지는데 월세 부담까지 가중
이중고 시달리는 임차인들… 정부가 대응 나섰다

전세사기를 피하려던 임차인들이 새로운 주거비 부담에 직면하고 있다.
서울 강북 지역 아파트에서 보증금 5000만 원에 월세 400만 원이라는 이례적인 계약이 체결되면서, 월세 시장의 양극화와 비용 부담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전세보다 빠르게 늘어나는 월세 계약

전세사기를 우려한 수요가 월세 시장으로 몰리면서, 전세보다는 월세를 선호하는 흐름이 두드러지고 있다.
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1~5월 전국에서 체결된 월세 계약 건수는 74만3733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3.9% 증가했다. 반면 전세 계약은 7.4% 증가에 그쳤다.
전체 임대차 계약 중 월세 비중은 61.2%로, 전년도 같은 기간보다 3.4%포인트 상승했다. 월세가 전세를 빠르게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서울 아파트 시장에서는 고액 월세 사례가 확산 중이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자료에 따르면, 1~5월 사이 서울에서 100만 원 이상의 월세 계약은 1만8035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소폭 증가했다.

더 주목할 점은 고액 월세 현상이 기존 강남권을 넘어 강북 지역으로도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5월,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e편한세상 신촌 4단지’ 전용 84㎡가 보증금 5000만 원에 월세 400만 원에 거래됐고, 3월에는 동대문구 용두동 ‘청량리역 한양수자인 그라시엘’에서도 같은 조건의 계약이 성사됐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전세 물량 부족과 월세 급등이 동시에 나타나는 상황에서, 무주택자들의 주거비 부담이 앞으로 더 가중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세사기 AI로 선별… ‘이상 거래’ 조기 차단

이에 국토교통부는 올해부터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전세사기 의심 거래를 사전에 걸러내는 시스템을 본격 가동하고 있다.
국토부 소비자보호기획단은 AI에 거래 유형, 주택 가격, 임대인 특성 등 다양한 데이터를 학습시켜 위험성이 높은 계약을 선별한다.
이 과정을 통해 선별된 의심 거래는 경찰과 검찰, 지방자치단체에 곧바로 통보돼 조사를 받게 된다.
국토부는 “AI 기반 감시 체계를 계속 고도화해 전세사기뿐 아니라 기획부동산 등 시장질서 교란행위까지 폭넓게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존에는 사람이 직접 의심 거래를 선별하는 방식이었지만 AI 도입으로 탐지 속도와 정확도가 크게 개선되어, 실제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거래를 빠르게 막을 수 있게 됐다.
임대인 이력, 계약 전에 본다

전세계약을 앞둔 예비 임차인이 임대인의 전세보증 사고 이력을 사전에 확인할 수 있는 제도도 시행 중이다. 국토부는 지난 5월부터 ‘임대인 정보조회 제도’를 확대 시행하고 있다.
개정된 주택도시기금법에 따라, 예비 임차인은 계약 전 단계에서 임대인의 동의 없이도 HUG(주택도시보증공사)를 통해 보증가입 현황, 보증금 반환 불이행 이력, 최근 3년간 대위변제 사례 등을 열람할 수 있다.
이 정보는 공인중개사 확인서와 함께 HUG 지사를 방문하거나, 6월 23일부터는 ‘안심전세앱’을 통해 비대면으로도 조회할 수 있다.
계약 당일 임대인을 직접 만난 경우에도 앱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정보 확인이 가능하다.

정부는 이 제도가 전세사기 예방에 실질적인 효과를 낼 것으로 보고 있으며, 실제로 임대인이 보유한 주택 수에 따라 보증 사고율은 큰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4년 기준으로 1~2채 보유 임대인의 사고율은 4% 수준이지만, 10~50채를 보유한 경우 46%를 넘었고 50채를 초과한 경우에는 62.5%에 달했다.
김규철 국토부 주택토지실장은 “임차인이 계약 전에 스스로 위험을 판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 것”이라며 “주거안정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정책을 계속 보완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전세사기 예방을 위한 기술과 제도 도입에 나섰지만, 시장에서는 전세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서 고액 월세라는 또 다른 부담이 나타나고 있다.
AI 도입과 정보공개 확대는 시작에 불과하다. 주거비 부담 완화를 위한 종합적인 정책과 실행력이 병행되지 않으면, 임차인의 현실은 달라지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