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하늘 뒤덮은 벌레 떼 공포
미국선 완전히 사라졌다는데
한국엔 왜 더 극성 부리나

“창문을 열기가 무서워 차라리 환기를 포기했어요. 한 걸음 내딛기도 두렵습니다.”
서울 시민들의 일상이 벌레와의 전쟁이 됐다. 도심을 뒤덮은 이 벌레의 정체는 ‘러브버그’, 붉은등우단털파리라는 이름의 외래종 곤충이다. 보기에도 혐오스럽고, 짝지어 날아다니는 모습에 공포심마저 유발한다.
올해 상반기에만 서울시에 접수된 방역 민원은 4700건이 넘어가며, 역대 최대 민원 기록을 갈아치울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과거 러브버그가 극성을 부리던 미국 플로리다에서는 최근 개체 수가 급격히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외래종 곤충이 미국에선 사라졌고, 한국에선 빠르게 퍼지는 상황이다. 두 지역의 차이는 무엇 때문일까.
서울 시민의 일상까지 침투한 러브버그

서울시의회 윤영희 의원에 따르면, 러브버그 관련 민원은 2022년 4400여 건에서 2023년 5600건, 올해는 상반기만에 4700건을 넘기며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윤 의원은 “러브버그가 본격적으로 퍼지기 전부터 민원이 급증했다는 점에서 단순한 불쾌감을 넘어 시민 생활에 실질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민원은 금천구와 은평구, 관악구, 강서구 등 서남·서북권을 중심으로 집중되고 있으며, 기존 하천변 위주 확산 패턴에서 벗어나 도시 전역으로 퍼지고 있다.
윤 의원은 지구온난화와 도시열섬 현상을 언급하며 “제2, 제3의 러브버그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방제와 교육, 홍보, 연구가 조화를 이루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며 “시민 안전을 지키기 위해 보다 선제적이고 체계적인 방제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시는 이에 대응해 지난 3월 ‘대발생 곤충 관리 및 방제 지원 조례’를 제정하고 유행성 불쾌 곤충에 대한 통합 방제 계획을 수립했다.
자치구에는 방제 협조 공문을 세 차례 보내며 비화학적 방제 중심의 대응 체계, 시민 홍보, 유관기관과의 협력 강화를 추진 중이다.
플로리다에서 사라진 러브버그, 도대체 어떻게?

한때 러브버그는 미국 플로리다에서도 공포의 대상이었다. 매년 4~5월이면 수백만 마리 러브버그가 짝을 지어 하늘을 새까맣게 덮었다.
자동차 앞유리와 라디에이터 그릴이 벌레 사체로 막히는 바람에 운전 자체가 어려울 정도였지만, 최근 수년 사이 러브버그는 플로리다에서 거의 자취를 감췄다.
현지 언론 WKMG에 따르면, 플로리다대 곤충학자 노먼 레플라 박사는 “수십 년간 러브버그를 관찰해 온 장소를 방문했지만 지난해 봄에는 단 한 마리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도시 지역에서는 이미 자취를 감췄고, 일부 목초지나 농장에서만 소량 발견될 뿐이다. 세차장 업계 역시 “이전엔 러브버그 제거 서비스가 특수였지만, 요즘은 아예 그런 수요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명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기후 변화, 도시화로 인한 서식지 파괴, 천적 생물 증가 등의 가설을 제시한다.
러브버그는 온도와 습도 변화에 민감한데, 최근 플로리다의 봄철 가뭄이 생존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또한 도시화로 유충이 서식하던 썩은 유기물 환경이 줄어들었고, 새·거미·잠자리 등의 천적이 이들을 먹이로 인식하고 포식하기 시작한 것도 개체 수 감소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국에선 왜 번지고 있나… 7월 중순 이후 줄어들 듯

러브버그는 한국에서는 2015년 인천에서 처음 관찰된 뒤 2022년부터 서울·경기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국 산둥반도의 칭다오 지역에서 물류 유통 과정 중 유입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박선재 국립생물자연관 연구원은 지난 1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러브버그는 보통 6월 중순부터 등장하고, 개체 대부분은 7월 중순이면 사라진다”고 설명했다.
성충은 일주일 내외로 짧은 수명을 갖고, 장마철이 끝나면서 자연히 개체 수가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계양산, 북한산 등 낙엽이 잘 쌓이는 산림지대에서 유충이 서식하다가 일시에 성충이 되어 집단 신혼비행을 하며 도심으로 유입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천적 문제도 초기엔 거의 없었지만, 최근 현장 조사에서는 까치, 참새, 거미, 사마귀 등 다양한 생물이 러브버그를 잡아먹는 장면이 포착되고 있다. 박 연구원은 “자연 생태계의 자정 작용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방제법으로는 생활 조명을 줄이고 어두운 옷을 착용하는 등 실생활 팁이 제시되고 있으며, 서울시는 올해부터 빛을 이용해 러브버그를 특정 장소로 유인하는 포집 장치를 시범 운영 중이다.
러브버그는 단순한 계절성 벌레로 치부하기에는 그 피해가 크다. 확산 원인을 명확히 파악하고, 중장기적인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미국 사례처럼 자연적 요인 외에도 제도적 대응이 병행되어야 실질적인 방제가 가능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빠른 대응과 지속적인 관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