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도 폭염에 유럽이 변했다
에어컨 불모지, 이젠 신흥 시장

“에어컨 없이도 괜찮던 나라였는데, 이제는 없으면 못 산다.”
그동안 여름에도 시원한 날씨를 자랑하던 유럽이 이제 더위에 신음하고 있다. 40도에 육박하는 폭염, 밤에도 식지 않는 열기로 인해 에어컨 수요가 급증하면서 판도가 뒤바뀌었다.
에어컨 보급률이 한 자릿수에 불과하던 유럽이, 삼성전자와 LG전자에게는 새로운 전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에어컨 불모지, ‘기회의 땅’으로 변신

한여름에도 30도를 넘지 않던 유럽은, 최근 몇 년 사이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체감 기온이 40도에 이르는 극한 날씨를 경험하고 있다. 과거엔 필요조차 없던 냉방기가 이제는 생존 도구가 되고 있다.
하지만 보급률은 여전히 낮다. 2022년 기준 유럽 전체 가정용 에어컨 보급률은 19% 수준에 불과하며, 프랑스와 독일은 5%도 채 되지 않는다. 한국이나 미국처럼 90%를 웃도는 나라와는 큰 격차다.
에어컨 보급이 더딘 데는 이유가 있다. 온화한 기후와 높은 전기료, 도시 미관을 중시하는 문화, 그리고 엄격한 친환경 규제가 그동안 냉방기 확산을 가로막아왔다.

하지만 지난해 파리에서 열린 올림픽 준비 과정에서 냉방 설비 부족으로 곤욕을 치른 이후, 유럽 사회 전반에 ‘냉방 인프라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커지기 시작했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GMI는 유럽 에어컨 시장이 2032년까지 연평균 4.8%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고, 또 다른 조사기관인 모도 인텔리전스도 2027년까지 5.8%의 성장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삼성·LG, AI와 히트펌프로 유럽 공략

이 틈을 파고든 것이 바로 삼성전자와 LG전자다.
양사는 지난 3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유럽 최대 냉난방공조 전시회 ‘ISH 2025’에 나란히 참가해 고효율 히트펌프와 AI 기반 냉방 솔루션을 앞세워 존재감을 과시했다.
삼성전자는 ‘비스포크 AI 무풍콤보’ 벽걸이형 에어컨, ‘슬림핏 클라이밋허브’, ‘EHS 모노 R290’ 등을 선보였으며, ‘스마트싱스’ 플랫폼을 통해 가정 내 에너지 효율까지 최적화할 수 있는 스마트홈 기술도 함께 제시했다.
LG전자도 ‘써마브이 R290 모노블럭’, AI가 냉방 세기를 자동으로 조절해 주는 상업용 시스템 ‘멀티브이 아이’ 등으로 관람객들의 이목을 끌었다.
두 회사는 난방 중심의 유럽 시장 특성에 맞춰 히트펌프 기반의 고효율 통합 시스템을 전면에 내세웠다. 또한 환경 영향을 줄인 자연냉매 R290을 적용해 까다로운 친환경 규제에도 적극 대응하고 있다.
친환경 규제의 벽 넘는 ‘차별화 전략’

유럽 시장은 ‘지속가능성’을 핵심으로 하는 규제가 많은 까다로운 지역이다. 이에 국내 기업들은 단순한 제품 판매를 넘어, 기술력으로 해법을 제시하는 전략에 나섰다.
LG전자는 지난해 프랑크푸르트에 ‘에어솔루션연구소’를 설립하며 지역 맞춤형 공조기기 개발에 착수했다. 이는 각국의 기후와 건축 구조, 에너지 정책을 반영해 보다 세밀한 제품을 내놓기 위한 포석이다.
회사 측은 지역 맞춤형 기술력과 고효율 설계를 앞세워 유럽을 포함한 글로벌 공조 시장에서 차별화를 꾀하겠다는 전략을 밝혔다.
업계 관계자도 “유럽은 여전히 규제가 까다롭지만, 폭염이 반복되며 수요 자체는 빠르게 늘고 있다”며 “결국 소비자는 기술력과 친환경 설계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