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억 대출사기, 잃은 건 고객 신뢰
경영진은 성과급 챙기고, 금고는 줄도산
정부 감시망 피해간 구조적 허점 드러나

“노후자금 다 맡겼는데, 순식간에 사라질까 봐 무서워요.”
성남의 한 새마을금고에서 1700억 원이 넘는 돈이 허공으로 사라졌다.
전국적으로 1200곳이 넘는 영업점을 보유한 새마을금고는 지역민들의 삶과 가장 가까운 금융기관으로 자리해 왔다.
하지만 그 신뢰를 발판삼아 수백억 원대의 사기를 벌인 정황이 드러나면서, 재산을 믿고 맡겼던 국민들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잇단 사고, 드러난 내부통제의 민낯

경기 성남의 한 새마을금고에서 드러난 1716억 원 규모의 부당대출 사건은 금융 시스템의 구멍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경찰은 내부 직원과 외부 부동산개발업자가 공모해 허위 계약서로 약 80건의 대출을 받아낸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새마을금고중앙회는 이미 지난해 정기 검사에서 문제를 인지하고, 관련 임직원 4명을 해임하는 등 중징계를 내린 후 경찰에 사건을 넘겼다.
그러나 사건이 발생한 지 수년이 지난 뒤에야 조치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내부통제의 무력함을 보여준다.
금융 전문가들은 “새마을금고는 금융위원회나 금감원의 직접 감독을 받지 않아, 통제가 느슨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금융기관의 틀을 갖추고 있지만, 실상은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1조 7000억 적자… 금고 줄폐업까지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라는 점인데, 지난해 새마을금고는 총 1조7382억 원의 순손실을 기록하며 창립 이래 최대 규모 적자를 냈다.
이전 해 흑자 860억 원에서 불과 1년 만에 손실로 돌아섰으며, 건전성 지표도 추락해 연체율은 5.07%에서 6.81%로, 고정이하여신비율은 9.25%로 치솟았다.
전체 1276개 금고 중 287곳이 경영개선 조치를 받았다. 2년 전엔 54곳에 불과했지만,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여파로 무려 5배 넘게 급증했다.
파산한 금고의 예금 중 5000만원 초과분은 보장되지 않으며, 투자금 성격의 출자금은 아예 보호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예금자들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
실제 일부 부실 금고는 합병 절차도 제대로 진행되지 못한 채 폐점하거나 파산에 이르렀다.
역대급 성과급 챙긴 경영진… 고객은 책임만?

더 큰 문제는 이런 경영 위기 속에서도 경영진 일부는 억대 ‘성과급’을 챙겼다는 사실이다.
새마을금고중앙회 노동조합은 중앙회 임원 4명이 ‘경영활동수당’이라는 명목으로 월급의 200%를 지급받았다고 밝혔다.
이들은 공식적으로 성과급 제도가 폐지되자, 그 자리에 새로운 명칭의 수당을 만들어 기존과 동일한 금액을 받은 것으로 지적된다.
노조 측은 “전국 금고가 2조 원 가까운 손실을 낸 상황에서 임원들만 퇴직금을 2배 인상하는 등의 특혜를 누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중앙회는 “이사회에서 적법하게 의결된 사항이며, 성과 미달 시 수당 전액을 반납하게 되어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내부 구성원들 사이에서는 “부실금고를 관리할 책임을 지는 위치에 있는 이들이 가장 먼저 보상을 챙긴다”는 불만이 팽배하다.
금융당국의 그림자 없는 사각지대… 구조 개혁 시급

새마을금고는 유일하게 금융위원회나 금감원이 아닌 행정안전부의 감독을 받는데, 이는 ‘금융기관’으로서 활동하면서도 일반 은행이 따라야 하는 규제를 피해갈 수 있는 구조적 허점이다.
이 때문에 감시 체계가 느슨할 수밖에 없고, 그 결과가 오늘날의 금융사고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지난해 전체 금고의 22.5%가 경영개선 조치 대상이었고, 연체율과 고정이하여신비율은 급등했다.
국회에서는 이 감독 체계를 금융당국으로 이관하는 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박정현 의원 등이 발의한 개정안은 새마을금고의 신용 및 공제 사업에 대해 금융위원회가 직접 감독하고, 금감원이 검사를 맡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단순한 합병이나 징계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다”며, 감독 권한 이전을 통한 전면 개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