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 납부자만 바보?
건보제도 구멍… 4년간 39억 샜다
국회, 늦장대응 대신 법 개정 추진

“돈은 안 냈는데 병원비는 돌려받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도입한 ‘본인부담상한제’의 허점을 악용해 수천만 원대 혜택을 받아간 건보료 체납자들이 있었던 사실이 드러났다.
성실하게 보험료를 내온 이들 입장에서는 분통이 터지는 일이다. 제대로 된 제도 보완도 없이 세금만 줄줄 새고 있는 현실에 국회가 결국 칼을 빼 들었다.
체납자 4000명, 39억 수령… 시스템 구멍 드러나

건강보험공단이 시행하는 ‘본인부담상한제’는 환자의 과도한 의료비 부담을 줄이기 위한 제도다. 1년간 낸 병원비가 일정 금액을 넘으면, 그 초과분은 공단이 대신 지불한다.
2024년 기준 상한선은 개인 소득에 따라 87만 원에서 808만 원이다. 이 제도가 허술한 관리 속에 체납자들에게도 적용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2021년부터 2024년까지 4천 명이 넘는 고액·장기 체납자가 약 39억 원의 초과금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 중 일부는 보험료를 1년 넘게, 1천만 원 이상 밀린 이들이었다.
작년 한 해에만 1천여 명의 체납자가 총 11억 5천만 원의 환급금을 챙겨갔다. 이는 전체 체납자의 3% 수준이지만, “매달 꼬박꼬박 보험료를 내는 국민의 돈이 부당하게 새 나가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법안 있었지만 무산…3년간 ‘늑장 대응’

사태의 심각성은 이미 21대 국회에서도 인지됐다. 당시 체납된 보험료와 환급금을 맞바꾸는, 이른바 ‘상계법안’이 발의됐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건강보험 급여에 대한 권리는 압류할 수 없다는 법적 장벽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건보공단은 이후 환급금에서 밀린 보험료를 미리 제하고 지급하는 ‘공제 방식’으로 개선하겠다고 했지만, 3년 넘도록 실제 변화는 없었다.
이와 유사한 문제는 ‘본인부담금 환급금’ 제도에서도 발견됐다.
병원이나 약국이 진료비를 잘못 청구해 환자가 돌려받게 되는 이 환급금 역시 체납 보험료와 상계가 가능함에도, 공단 시스템의 허점으로 인해 수천 명의 체납자들이 제대로 검증 없이 돈을 받아 갔다.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2500~2800명의 체납자가 많게는 3천만 원 이상을 돌려받았다. 일부는 법에서 정한 절차조차 거치지 않았다.
국회, 드디어 입법 나섰다

문제가 장기간 방치되자 국회가 직접 움직였다. 더불어민주당 서미화 의원은 8일,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해당 개정안은 본인부담상한제에 따라 지급되는 초과금을 체납 보험료로 먼저 충당하는 공제 조항을 신설했다.
서 의원은 “고액 체납자에게 환급금이 돌아가는 현행 제도는 본래 목적에서 벗어났다”며, “성실히 납부하는 국민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보공단 역시 뒤늦게 대응에 나섰다. 공제 방식의 법 개정을 추진함과 동시에, 본인부담금 환급금은 관련 부서 협의와 시스템 정비를 통해 상계 처리가 가능하도록 개선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전문가들은 건강보험 제도의 신뢰 회복을 위해 이번 개정안의 통과가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보험 제도가 체납자에게도 혜택을 준다는 인식은 결국 전체 시스템의 지속 가능성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보건정책 전문가는 “보험료를 성실히 내는 다수의 가입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법 개정은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