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앞두고 한국 기업 때리기?” … 헝가리발 ‘비용 폭탄’ 터진 결정적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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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업들 투자 환경 급변
삼성SDI·SK이노베이션 위기
철수도 협상도 어려운 상태
헝가리
헝가리 투자 환경 급변 / 출처 : 뉴스1·게티이미지뱅크

수조 원을 투자해 공장을 세운 한국 기업들이 헝가리 정부로부터 “법이 바뀌었으니 따라라”는 말을 들었다.

유럽 배터리 생산 1위 거점이었던 헝가리에서 전례 없는 투자 환경 악화가 현실화되고 있다. 초기 약속과 달리 세금 구조가 변경되고, 환경 규제가 강화되며, 계약서에 없던 비용이 추가되는 상황이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타이밍이다. 공장 가동이 본격화된 직후부터 정책이 급변했고, 이미 막대한 자본이 투입된 기업들은 철수도, 협상도 어려운 딜레마에 빠졌다.

헝가리 GDP의 25%를 차지하는 자동차 산업의 핵심 파트너였던 한국 기업들은 이제 정치적 볼모가 되어가고 있다.

9% 법인세의 함정: EU 기금 동결이 바꾼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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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세 / 출처 : 연합뉴스

2010년대 중반, 헝가리는 유럽 최저 수준인 9% 법인세와 서유럽 절반 수준의 인건비(월 187만원)를 내세워 한국 배터리 기업들을 적극 유치했다.

삼성SDI는 괴드 공장에 1조원 이상을 투자했고, SK이노베이션 역시 코마롬과 이반차에 공장을 세웠다. 이후 2022년 헝가리는 세계 4위 배터리 생산국에 올랐다.

그러나 2022년 말부터 상황이 급변했다. EU는 사법부 독립성과 부패 방지 문제를 이유로 헝가리에 배정된 결속기금 약 100억 유로(13조원)를 동결했고, 2024년 말에는 미사용 기금 10억 유로가 소멸됐다.

더 충격적인 것은 2025년 헝가리가 역사상 처음으로 순기여국으로 역전되었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EU로부터 받기만 하던 나라가 오히려 내는 쪽이 된 것이다.

재정 압박에 직면한 헝가리 정부는 즉각 손쉬운 현금원을 찾았다. 괴드 시의 삼성SDI 공장은 특별경제구역으로 지정되면서 지방세가 중앙정부로 이전됐고, 페테르 오버리 시장은 “세수의 절반이 사라졌다”며 공개 항의했다.

주민들은 소음과 화학물질 우려는 떠안으면서 세금 혜택은 받지 못하는 구조에 분노했고, 그 화살은 정부가 아닌 공장을 향했다.

200배 오염 vs 오염 없음: 총선 앞둔 정치적 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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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SDI / 출처 : 연합뉴스

최근 헝가리 독립 언론 텔렉스는 삼성SDI 괴드 공장에서 2023년 3월 기준치 200배를 초과하는 유해물질이 검출됐으며, 정부가 이를 은폐했다고 보도했다.

일부 보도에서는 500배 초과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텔렉스는 도청 자료와 국가안보 평가 보고서를 인용하며, 2023년 내각회의에서 배터리 산업 투자 위축 우려로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오르반 정부는 가짜 뉴스라고 즉각 반박했고, 삼성SDI는 “검은 먼지는 유해물질이 아닌 흑연”이라며 오염 사실을 부인했다. 헝가리 당국 조사에서도 오염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이 논란이 총선을 두 달 앞두고 터진 타이밍에 주목하고 있다. 현재 16년 집권 여당은 야당에 10%포인트 뒤처진 상태이며, 외국 기업에 대한 반감은 정치적 무기가 되고 있다.

더 복잡한 것은 중국 CATL 변수다. 헝가리는 데브레첸에 CATL 공장 유치를 위해 73억 유로(12조원) 규모의 보조금을 투입했다.

먼저 진출한 한국 기업에는 인프라 지원을 미루면서, 후발주자인 중국 기업에는 역대 최대 보조금을 제공한 것이다. 업계는 이를 협상력 확보를 위한 정치적 카드로 분석한다.

철수도 못하는 덫: 에너지 위기가 가속화한 비용 폭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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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 출처 : 연합뉴스

배터리 공장의 치명적 약점은 전력 의존도다. 헝가리는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국가로,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가격이 급등했다.

헝가리는 EU에 대러 제재 일시 면제를 요청하며 크로아티아 경유 송유관으로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시도 중이다. 이 과정에서 산업용 전기요금이 두 배 가까이 오르면서, 원가 경쟁력이 직격탄을 맞았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환경 규제 기준이 상향되고, 폐수 처리 비용이 증가했으며, 계약서에 없던 특별 환경부담금·지역개발분담금·인프라유지분담금이 추가됐다.

기업이 항의하면 “법이 바뀌었다”는 답변만 돌아온다. 조건 A로 투자했는데 조건 B로 바뀐 셈이다.

그렇다고 철수도 쉽지 않다. 수조 원의 공장은 이미 가동 중이고, 벤츠·BMW·아우디 등 완성차 업체와의 장기 공급계약이 묶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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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이노베이션 헝가리 공장 / 출처 : SK이노베이션

헝가리의 GDP 성장률은 2025년 0.3%에 그쳐 목표치 3.4%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경제가 나빠질수록 정부는 기업을 더 조이고, 기업은 추가 투자를 멈추는 악순환이 시작됐다.

업계 일각에서는 “헝가리가 유럽 진출의 지름길에서 골칫거리로 전환되는 중이다”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헝가리의 친러시아 성향은 EU 내 고립을 심화시켰고, 유로뉴스는 헝가리를 ‘푸틴의 트로이 목마’로 표현하기도 했다.

배터리가 전략물자로 취급되면서 공급망 실사와 투명성 요구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정치적으로 고립된 국가에 거점을 둔다는 것 자체가 비용이 되고 있다.

한 산업 관계자는 “투자 유치 단계에서는 파격적 조건을 제시하고, 투자가 완료되면 규칙을 바꾸는 방식은 장기적으로 국가 신인도를 훼손한다”며 “이미 투입된 자본 때문에 쉽게 철수할 수 없는 기업들의 약점을 이용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4월로 예정된 헝가리 총선 결과가 향후 투자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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