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하던 일과 직업이 사라진다는 사실 앞에서 아쉬움과 먹먹함이 남는다.” 지난 2월 6일, MBC 기상캐스터 금채림이 마지막 방송을 마치며 남긴 말이다.
그와 함께 이현승, 김가영, 최아리 등 MBC 프리랜서 기상캐스터 전원이 계약 종료로 방송가를 떠났다. 1995년부터 31년간 이어져 온 MBC 기상캐스터 제도가 완전히 폐지된 것이다. 이 극단적 결정의 중심에는 2024년 9월 15일 숨진 故 오요안나의 비극이 있다.
원고지 17장 유서가 드러낸 ‘직장 내 괴롭힘’

오요안나가 남긴 유서는 원고지 17장 분량이었다. 그 안에는 동료 기상캐스터들로부터 받은 괴롭힘의 기록이 담겨 있었다.
특히 A씨, 김가영, 최아리, 이현승이 참여한 단톡방에서는 “완전 미친 X”, “몸에서 냄새난다. XX도 가지가지”, “(‘더 글로리’) 연진이는 방송이라도 잘했지”라는 험담이 오갔다. 드라마 속 학교폭력 가해자를 빗대어 고인을 조롱한 것이다.
유족 측은 “A씨와 최아리는 대놓고 괴롭혔지만, 이현승과 김가영은 뒤에서 몰래 괴롭혔다. 두 사람은 장례식장에 오지도 않았다”며 분노했다. 현재 유족은 A씨를 상대로 5억 1,000만 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 중이다.
2022년 1월부터 2023년 1월까지 오요안나가 겪은 지각 및 방송사고는 9건. 심각한 괴롭힘 속에서도 방송을 이어가야 했던 그의 고통을 보여주는 수치다.
MBC의 ‘선택적 조사’와 제도 폐지 논란

MBC는 2025년 5월 특별관리감독 조사를 실시했으나, 가해자로 지목된 4명 중 A씨에 대해서만 계약을 해지했다. 김가영, 최아리, 이현승 3명은 “가해자로 볼 근거를 찾을 수 없다”는 판단을 받았다.
유족과 여론의 거센 반발이 이어졌지만, MBC는 이듬해 9월 15일 오요안나 사망 1주기에 프리랜서 기상캐스터 제도 자체를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새로 도입된 ‘기상기후 전문가’ 제도는 정규직 경력직 채용으로, 기상·기후·환경 전공자나 관련 경력 5년 이상 소지자를 대상으로 한다. MBC는 “기존 역할은 물론 취재, 출연, 콘텐츠 제작까지 담당하는 전문 인력”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사건의 본질인 직장 내 괴롭힘 재발 방지 대책은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았다. 제도 폐지가 문제 해결인가, 아니면 책임 회피인가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다.
조직 문화 개선 없인 또 다른 비극 반복될 수도

한편 31년 역사를 가진 직업이 하루아침에 사라진다는 것은 개인에게 큰 충격이다. 금채림이 “약 5년의 시간 동안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없다”면서도 “아쉬움과 먹먹함”을 토로한 이유다.
제도 폐지로 가해 의혹을 받았던 이들도, 함께 일했던 동료들도 모두 MBC를 떠났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남아있다. 프리랜서라는 불안정한 고용 형태, 폐쇄적인 방송가 위계 문화,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미온적 대응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한, 제2, 제3의 오요안나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조직 문화를 근본적으로 개선하지 못한다면, 제도 폐지는 단지 상처를 덮는 임시방편에 불과할 것이다. 방송가 전체가 이번 사건을 뼈아픈 교훈으로 삼아, 투명하고 안전한 노동 환경을 만들어가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