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식이라는 비아냥에 상처받아요” … 은퇴 남성 55.7% “할 일 없이 시간 보낸다”, 정체성 위기 ‘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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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가족 지위 낮아졌다 느끼는 남성 절반
남성 고독사 84.1% 차지, 50·60대 가장 취약
우울증 걸릴 가능성 여성의 2배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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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우울증 급증 / 출처 : 뉴스1

은퇴 남성들이 ‘삼식이’라는 비아냥에 상처받고 있다.

30년 넘게 가장으로 살아온 남성들에게 은퇴는 단순히 직장을 떠나는 것 이상의 의미다. 생계부양자로서의 정체성이 무너지고, 가족 내 지위가 흔들리며, 경제적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는 단순한 심리적 문제가 아니라, 통계가 보여주는 냉혹한 현실이다.

역할 없는 역할, 남성이 겪는 정체성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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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우울증 급증 /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조사한 결과 완전 은퇴한 남성들이 가장 크게 느끼는 변화는 ‘할 일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55.7%)과 ‘직업인으로서의 지위 상실'(53.3%)이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응답자의 절반 가까이가 ‘가족 내에서 지위가 낮아졌다’고 느낀다는 점이다. 은퇴가 주는 스트레스는 ‘소득 감소’, ‘심리적 위축감’, ‘소비수준 조정’ 순으로 나타났다.

남성이 은퇴 후 적응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14.46개월이다. 1년 이상 지위와 역할 변화, 경제적 조건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고통받는다는 의미다.

라이나생명 산하 라이나전성기재단 보고서에 따르면 남성은 재직 중 행복지수가 여성보다 높다가 퇴직 후 급감한다. 반면 여성은 은퇴 전후 변화가 미미하다. 남성에게 일은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정체성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경제력 상실이 가져오는 가혹한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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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구직자 / 출처 : 연합뉴스

가족 내 ‘생계부양자’로서의 정체성을 강하게 가진 남성들은 소득이 끊기는 순간 자존감이 무너진다.

한 연구에 따르면 은퇴 후에도 계속 일하는 남성은 직종과 관계없이 일을 그만둔 남성보다 삶의 만족도와 정서적 안정감이 모두 높았다.

문제는 재취업의 벽이다. 은퇴 후 일자리는 대부분 단순 하위직으로 내몰린다. 경제적 여유가 없으면 가족 내 발언권도 약해진다.

60대 남성 김모씨는 매일 새벽 폐지를 주우며 하루를 시작한다. 점심은 무료급식소에서, 저녁은 3천원짜리 국밥으로 해결한다. 하루 생활비 1만원으로 버티는 게 일상이다.

이런 극단적 사례가 특별하지 않다. 2024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중 42.8%가 65세 이상 노인이다. 65세 이상 인구 10명 중 1명이 정부 지원을 받으며 살아간다.

침묵하는 우울증, 2배 높은 자살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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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우울증 급증 /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에 따르면 남성은 은퇴 직후 우울증에 걸릴 가능성이 여성에 비해 2배 높다. 남성 우울증의 특징은 슬픔보다 분노로 표출된다는 점이다.

평소보다 초조해하거나 유머 감각이 없어지고, 사소한 일에 화를 잘 낸다. 소화불량, 두통, 허리 통증 같은 신체 증상도 나타난다. 하지만 남성들은 이를 ‘나약함’으로 여겨 진료를 받지 않는다.

2023년 기준 65세 이상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은 40.6명이다. 전체 연령대 평균 27.3명의 1.5배다. 특히 80대 남성은 117.9명으로 여성(30.9명)의 4배에 달한다.

최근 5년간 자살한 노인은 1만 8044명이다. 하루 평균 1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대한민국 노인 자살률은 OECD 평균 16.3명의 2.6배로 20년 넘게 1위를 기록하고 있다.

2023년 고독사 통계는 더 충격적이다. 고독사 사망자 중 남성이 84.1%를 차지했다. 특히 50·60대 남성이 53.9%로 가장 취약했다.

다시 일어서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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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우울증 급증 /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전문가들은 은퇴 전부터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생계부양자 역할 외에 남편, 아버지로서의 다양한 역할에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

가족과의 대화가 중요하다. 은퇴를 앞두고 배우자, 자녀와 함께 은퇴 후 생활방식을 논의해야 한다. 집안일을 나눠 맡고, 부부가 함께 취미활동을 시작하는 것도 방법이다.

재취업이나 자원봉사로 사회와의 연결고리를 유지하는 것이 필수다. 실제로 은퇴 후 재근로는 우울증 발생 가능성을 낮추고 인지기능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운동도 중요하다.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사람은 우울증에 걸릴 위험이 30% 낮아진다. 요가나 명상 같은 활동도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우울증 증상이 2주 이상 지속되면 전문의 상담을 받아야 한다. 청장년은 200회 이상 시도 끝에 자살에 이르지만, 노인은 2~4회 시도만으로 목숨을 잃는다. 조기 발견과 치료가 생명을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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