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봉양한다” 20% 불과
절반 이하로 급락… 반대는 급증
소득 수준 무관하게 찬반 동일

한국 사회를 지탱해온 전통적 가치관이 무너지고 있다. 부모를 자녀가 모셔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하는 국민이 5명 중 1명(20.6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7년 첫 조사 당시 과반(52.6%)이 찬성했던 것과 비교하면 18년 만에 절반 이하로 급락한 수치다. 반대 의견은 같은 기간 24.3%에서 47.59%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전국 7,300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제20차 복지패널 조사 결과는 단순한 수치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효(孝)와 가족애라는 이름으로 당연시됐던 부양의 책임이 이제는 개인의 선택이 아닌 사회 구조의 문제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매우 동의한다”는 극소수인 3.15%에 그친 반면, “반대한다”(39.47%)와 “매우 반대한다”(8.12%)를 합친 비율은 절반에 육박했다.
경제 형편과 무관… 부유해도 안 모신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인식 변화가 경제적 형편과 무관하게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저소득 가구의 찬성 비율은 20.66%, 일반 가구는 20.63%로 사실상 차이가 없었다. 반대 비율 역시 저소득 가구 49.17%, 일반 가구 47.37%로 유사했다.
과거에는 “형편이 되면 모셔야 한다”는 조건부 효 의식이 존재했지만, 이제는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부양을 개인의 몫으로 보지 않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자리 잡았다.
2013년 찬반이 처음 역전된 이후 격차는 매년 벌어졌다. 2016년과 2019년을 거치며 찬성 의견은 30%대에서 20%대 초반으로 추락했고, 2025년 현재는 20% 선을 간신히 유지하는 수준이다.
이는 한국 사회가 개인주의화됐다기보다, 가족 구조와 경제 환경이 근본적으로 변화했음을 반영한다. 맞벌이 증가, 핵가족화, 주거 공간 협소화 등으로 물리적·경제적으로 부모를 모실 여건 자체가 사라진 것이다.
의료·보육은 국가가… 압도적 공감대

국민들은 부양 책임을 가족에서 국가로 이전해야 한다는 명확한 신호를 보냈다. 국가 건강보험 축소 반대 의견이 70.50%에 달했고, 유치원·보육시설 무상 제공에는 72.68%가 찬성했다.
생존과 직결된 의료와 기초 보육만큼은 소득과 무관하게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보편적 복지에 대한 압도적 지지다.
반면 선별적 복지(가난한 사람만 대상)에는 반대(39.81%)가 찬성(33.36%)보다 많았다.
흥미로운 점은 저소득 가구에서 선별적 복지 찬성이 38.96%로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난 반면, 일반 가구는 보편적 복지 선호가 41.65%로 뚜렷했다는 것이다. 실제 수혜 가능성에 따른 계층별 이해관계가 투영된 결과다.
다만 대학 무상 교육에는 반대(42.13%)가 찬성(30.25%)보다 높아, 고등교육은 여전히 개인 선택의 영역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했다.
인식 변화 따라잡지 못하는 정책

전문가들은 한국 사회가 거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고 진단한다. 돌봄의 축이 가족 중심에서 국가 중심으로 명확히 이동한 만큼, 이에 걸맞은 공적 시스템의 질적 성장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올해부터 정부는 유아 무상교육·보육 지원을 4~5세로 확대해 약 50.3만 명이 혜택을 받게 되지만, 노인 돌봄 영역은 여전히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이다.
저출산·고령화가 가속화되는 현실에서 이번 조사 결과는 향후 복지 정책 설계와 예산 편성의 중요한 이정표가 될 전망이다.
인식은 이미 변했지만 체계가 따라가지 못할 경우, 부양 공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고스란히 개인과 가족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
효의 시대가 저문 자리에 국가가 책임지는 돌봄 사회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이제는 인식 전환을 넘어 구체적 실행의 단계로 나아가야 할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