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속 유일하게 웃은 산업
기후위기 속 기술력으로 승부
수출·고용 동시에 잡은 ‘물의 힘’

“불황인데 여기만 성장하고 있었다.”
국내 주요 산업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가운데, 물산업만은 정반대 흐름을 탔다.
침체된 글로벌 경기 속에서도 국내 물산업은 사상 처음으로 연매출 50조 원을 넘기며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보이지 않는 자산’으로 여겨지던 물이, 이제는 한국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위기 속 성장, 사상 첫 50조 돌파

환경부가 지난 3월 30일 발표한 ‘2024 물산업 통계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물산업 매출은 50조 9970억 원으로 집계됐다.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11년 이래 최초로 50조 원을 넘어선 것이다.
물산업은 단순히 상하수도 관리에 그치지 않는다. 취수부터 정수, 급수, 하수 처리, 수질 분석, 배관·펌프 제조까지 ‘물’이 지나가는 모든 순환과정이 포함된다.
이처럼 산업 범위가 넓은 만큼, 고용과 수출 면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실제로 지난해 물산업 관련 사업체 수는 전년보다 3% 증가한 1만 8075곳으로 집계됐고, 종사자 수 역시 21만 1385명으로 1.7% 늘었다.
수출도 꾸준히 증가하는 흐름이다. 지난해 물산업 수출액은 2조 679억 원으로 전년 대비 0.6% 상승했다.
특히 제품 제조업이 전체 수출의 88%를 차지하며 1조 8208억 원을 기록했고, 건설업은 1441억 원으로 뒤를 이었다.
국내 물기업의 해외 진출도 활발하다. 총 450개 기업이 해외에서 활동 중이며, 이 가운데 403곳이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기업들이다.
글로벌 무대 누비는 K-물기업

지난달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물산업 박람회 ‘워터코리아 2025’에서는 총 633억 원 규모의 수출 계약이 체결되며 K-물기업의 저력을 입증했다.
이 자리에서 한국수자원공사는 물·기후테크 기업 및 투자기관과 간담회를 열고 해외 진출 확대를 위한 방안을 모색했다.
윤석대 한국수자원공사 사장은 “물과 기후 분야는 미래 대응의 핵심이며, 이를 선도하기 위한 기술 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인공지능 정수장과 같은 한국의 초격차 기술들이 이미 해외에서 주목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국내 물기업이 CES에서 혁신상을 받는 등 국제무대에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수자원공사는 중기부, 지자체, 민간 투자기관과 함께 약 4700억 원 규모의 지역혁신 벤처펀드를 통해 물기업들의 투자를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기술 없인 생존 못 해… R&D는 과제

하지만 성장세 속에서도 해결해야 할 과제는 남아 있다. 핵심은 기술 경쟁력이다.
지난해 연구개발(R&D)에 투자한 물기업 비율은 전체의 19.8%에 그쳤고, 총 투자액도 8545억 원 수준에 머물렀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환경부는 혁신형 물기업을 선정해 지원하고 있다. 올해는 오는 4월 11일까지 10개사를 선정하는 공모를 진행 중이다.
신청 자격은 일정 매출을 올리는 중소 물기업 중 ▲연구개발비 비중 ▲수출 비율 ▲해외 인증 보유 등 조건을 충족하는 기업이다. 선정되면 5년간 최대 5억 원의 지원과 함께 해외 박람회 참가 등의 혜택이 주어진다.
환경부 관계자는 “대부분의 산업이 역성장을 겪는 와중에도 물산업은 반대로 성장하고 있다”며, “내수뿐 아니라 수출과 기술 기반을 확대해 전략 산업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