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아침,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다
세월은 흘렀지만 상처는 그대로다
남겨진 이들의 바람, ‘기억해달라’

“아직도 그날을 기억합니다. 눈앞에서 땅이 솟구치고, 사람과 차량이 날아올랐습니다.”
1995년 4월 28일, 대구 상인동 거리 한복판에서 일어난 가스폭발 참사는 단 8cm 크기의 구멍에서 시작됐다. 당시 아침 출근길과 등굣길로 북적이던 거리는 단 몇 초 만에 폐허로 바뀌었다.
그리고 올해, 그 끔찍했던 사고가 30주기를 맞는다. 남겨진 유족들은 점점 나이가 들어가고 있지만, 아직도 바라는 단 하나는 ‘잊히지 않는 것’이다.
평범했던 아침, 지옥이 되다

1995년 4월 28일 오전 7시 52분, 평온하던 대구 상인네거리에서 대형 폭발이 발생했다. 가스관에서 누출된 LPG가 하수관을 타고 도심 지하로 퍼졌고, 결국 지하철 1호선 공사장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씨와 만나 폭발했다.
현장은 순식간에 전쟁터로 변했다. 무게 280kg의 복공판은 폭발로 인해 3층 건물 옥상까지 날아올랐고, 차량과 사람들은 그대로 15m 아래로 추락했다.
그날 사고로 101명이 목숨을 잃었고 202명이 다쳤다. 사망자 중 절반 이상은 10대였으며, 영남중학교 학생 43명이 포함돼 있었다.
사고의 목격자였던 A 씨는 “영화처럼 폭발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믿기지 않는 현실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관리 부실·늑장 대응…막을 수 있었던 비극

사고의 원인은 명확했다. 백화점 신축공사 과정에서 도시가스관이 파손됐고 규정을 무시한 채 무허가로 굴착 작업이 진행됐다. 게다가 파손 후 30분이 지나서야 도시가스 회사에 신고하는 늑장 대응이 이뤄졌다.
당시 복공판 아래로 흐르던 두 개의 가스관은 라인마크로 표시돼 있었지만, 작업자들은 육안으로 어림짐작해 공사를 이어갔다.
가스가 누출된 지점은 백화점이었지만 폭발은 113m 떨어진 지하철 공사장에서 발생했다. 지하 매설물 사이를 타고 흘러간 가스가 우수관과 하수관을 통해 이동한 것이다.
사고로 인해 이후 국내 도시가스 안전 관리 시스템은 크게 개선됐다. 15km마다 안전 점검원이 배치되고 전국에 지하시설 지도가 제작됐다.
하지만 책임자들의 처벌은 가벼웠다. 벌금형, 징역 3~5년에 그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진짜 책임이 누구였는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흐지부지됐다.
유족들의 조용한 외침, ‘기억해달라’

사고 이후 3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달서구 학산공원에는 위령탑이 세워졌고 영남중에는 추모 공간이 마련됐다. 시간이 지나며 공간은 남았지만, 그날의 아픔을 생생히 기억하는 이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올해도 유족들은 조용한 추도식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은 단지 “이 사고를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는 말뿐이다.
송인숙 유족회장은 “겪지 않으면 금세 잊히는 게 사람 심리다. 고통스러운 기억은 더더욱 그렇다”며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에 교육 콘텐츠를 만들어 사고의 교훈을 남기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30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고통은 여전하군요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유족들에겐 무슨 말이 위로가 되겠습니까
그저 슬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