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5일 경남 사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공장에서 KF-21 양산 1호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25년간의 도전 끝에 이뤄낸 ‘항공 주권’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화려한 출고식 뒤에는 씁쓸한 현실이 숨어 있다. 한국이 독자 개발한 전투기지만, 정작 해외에 팔려면 미국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KF-21의 심장인 엔진이다. 현재 탑재된 GE F414-GE-400K는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 제품으로, 기본 추력 1만3000lbf를 자랑한다.
성능은 우수하지만 미국 부품이 단 하나라도 들어가면 국제무기거래규정(ITAR)의 통제를 받는다.
즉, 미국 국무부의 승인 없이는 제3국에 수출할 수 없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ITAR이 전투기 국산화와 독자적 수출을 가로막는 사실상의 족쇄”라고 토로했다.
9월 전력화를 앞둔 KF-21은 UAE 등 여러 국가의 관심을 받고 있지만, 계약 체결 전 반드시 미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는 단순한 절차 문제가 아니라 한국 방위산업의 자주권을 제약하는 구조적 모순이다.
T-50 수출 무산, 그 악몽이 되풀이될까

2015년 10월, 한국은 뼈아픈 경험을 했다. 국산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의 우즈베키스탄 수출이 추진됐지만, 미국이 ITAR을 근거로 반대하며 무산됐다.
록히드마틴의 기술과 부품이 들어간 T-50이 러시아로 기술 유출될 수 있다는 이유였다. 한국이 개발하고 생산했지만, 최종 결정권은 미국에 있었던 셈이다.
반면 T-50은 인도네시아, 이라크, 필리핀에는 수출됐다. 차이는 하나, 미국의 사전 허락을 받았느냐 여부였다.
국회 국방위원회 강선영 의원은 “국제 수출통제 체계 위반 시 감당해야 할 제재의 수위는 기업의 존폐를 위협할 정도”라며 “국가 차원의 체계적 대응 매뉴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KF-21도 같은 딜레마에 직면했다. AESA 레이더 등 핵심 기술은 자체 개발했지만, 엔진만큼은 미국 의존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이다.
3조원대 ‘엔진 독립 프로젝트’ 시동

정부는 이 족쇄를 끊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결정했다. 방위사업청에 따르면 내년(2027년)부터 14년간 3조3500억원을 지원해 기본 추력 1만6000lbf의 터보팬 엔진을 개발한다.
현재 KF-21 엔진보다 3000lbf 높은 추력으로, 5~6세대 전투기에 적용 가능한 수준이다.
F-35 같은 초고가 전투기를 도입할 재력은 없지만 노후 전투기 교체가 시급한 중견국들에게, KF-21은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
문제는 그 시장 공략을 위해서도 결국 미국의 승인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점이다.
KF-21 양산은 한국 방위산업의 기술적 성취다. 하지만 엔진이라는 ‘심장’을 타국에 의존하는 한, 진정한 기술 독립은 요원하다. 3조원대 엔진 개발 프로젝트가 성공하려면 최소 2040년대는 돼야 한다.
그때까지 한국은 한미동맹의 전략적 가치를 강조하는 외교적 노력과, 현실적 시장 공략을 병행해야 한다. 기술 주권과 수출 경쟁력,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한 장기전이 시작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