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일, 아랍에미리트(UAE)가 프랑스와의 라팔 F5 전투기 협상을 전격 종료했다.
8조6900억원 규모의 대형 사업이었지만, 프랑스가 전자광학 장비 등 민감 기술 이전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자 UAE가 테이블을 박차고 일어난 것이다.
이에 한국의 KF-21 보라매에게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지만, 기회에는 조건이 따랐다. UAE와 사우디아라비아는 단순 무기 구매가 아닌 기술 이전, 유지·보수·정비(MRO), 현지 생산을 하나의 패키지로 요구하고 있다.
특히 전투기 핵심 장비를 구동하는 소프트웨어 명령어 집합체인 ‘소스코드’ 공개까지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정부는 지금 미묘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최대 700대, 70조원 규모로 추산되는 중동 시장을 잡을 것인가, 아니면 ‘단군 이래 최대 무기 개발 사업’으로 평가받는 KF-21의 핵심 기술을 지킬 것인가.
기술 이전, 양날의 검

한국 정부가 소스코드 공개에 신중한 데는 이유가 있다.
2015년 미국이 AESA 레이더, 전자전 재머 등 4대 핵심 기술 제공을 거부했을 때, 한국은 독자 개발로 방향을 틀었고 국방과학연구소(ADD) 주도로 결국 국산화에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축적된 기술은 단순한 전투기 제작 능력을 넘어 한국의 ‘기술 주권’을 상징하게 됐다.
또한 LIG넥스원이 사우디와 UAE에 천궁-II(M-SAM) 지대공 유도무기를 수출하는 과정에서 광범위한 기술 이전 요구로 협상이 난항을 겪기도 했다.
게다가 KF-21 개발 중 인도네시아 국적 기술자가 내부 자료 유출 혐의로 수사받은 사례까지 있어, 정부의 경계심은 더욱 높아진 상태다.
70조 시장의 조건

반면 중동 국가들의 요구도 나름의 논리가 있다. UAE는 라팔 F5 사업에 35억 유로(약 6조800억원)를 투자할 예정이었다.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는 만큼 단순 구매자가 아닌 기술 파트너로서 긴밀한 참여를 원했던 것이다.
프랑스가 이를 거부하자 협상이 결렬됐고, 이제 같은 조건을 한국에 제시하고 있다.
중동 국가들이 기술 이전에 집착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정치·외교적 제약으로 미국 F-35 도입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자체적으로 전투기를 정비하고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해야 진정한 ‘기술 주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UAE는 현재 KF-21 외에도 F-16, 유로파이터 타이푼 등을 대안으로 검토 중이며, 가장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는 쪽과 계약할 가능성이 크다.
업계 일각에서는 한국이 인도네시아와 KF-21 협력 시 이미 기술 이전과 산업 협력 플랫폼을 제시한 선례를 들며, 중동 협상에서도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선택의 기로, 그리고 전망

국방 전문가들은 한국이 ‘선택적 기술 이전’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전망한다. 소스코드처럼 국가 안보에 직결된 핵심 기술은 보호하되, MRO와 부분 조립 생산 등은 허용하는 방식이다.
프랑스의 폐쇄적 태도와 차별화하면서도, 한국의 기술 주권은 사수한다는 복선이다.
시간은 한국 편이다. UAE가 라팔 협상을 전격 종료하면서 차세대 전력 공백이 발생했고, KF-21은 올 9월 1호기 전력화를 앞두고 있다.
중동 첫 수출 계약 체결에 성공하면 글로벌 신뢰도가 급상승하며, 최대 700대 규모의 잠재 시장이 열릴 수 있다.
2015년 미국의 기술 거부를 계기로 독자 개발에 성공한 KF-21이, 이번엔 기술 이전 협상에서 한국형 모델을 제시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소스코드를 일부만 이전하는 방법은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