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점업체 보증금 일부, 못 돌려받을 수도
납품대금 미정산에 소상공인·영세업체 ‘속앓이’

“보증금까지 위험할 줄은 몰랐습니다. 전부 날릴까 봐 밤에 잠이 안 와요.”
대형마트 홈플러스에 입점한 소상공인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홈플러스가 기업회생 절차에 들어가면서, 이들이 맡겨둔 보증금 일부가 회수되지 못할 가능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돌려받는 보증금도 ‘회생채권’?

25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홈플러스는 총 1조4605억원의 상거래채권과 1407억원의 임대보증금을 포함해 약 1조6000억원의 채무를 지고 있다.
여기에 카드결제대금을 기반으로 발행한 자산유동화증권(ABSTB) 4618억원까지 포함하면 홈플러스가 떠안은 빚은 2조원을 넘는다.
법정 회생 절차에서는 빚을 갚는 우선순위가 ‘공익채권-회생담보권-회생채권’ 순으로 매겨진다.
문제는 입점업체가 낸 임대보증금이 회생채권으로 분류되면, 계약이 종료돼도 전액을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일부 입점업체들은 보증금의 일부 혹은 전부를 잃을 수도 있다.
조건은 두 가지다. 확정일자와 사업자등록을 모두 갖췄을 경우에만 회생담보권으로 인정받을 수 있고, 둘 중 하나라도 빠지면 회생채권으로 간주될 위험이 있다.
게다가 서울 기준 환산보증금이 9억원을 초과하는 경우, 두 요건을 모두 충족하더라도 회생채권으로 처리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홈플러스는 이에 대해 “정상영업을 전제로 한 선제적 회생인 만큼 입점업체의 보증금은 앞으로도 문제없이 돌려드릴 것”이라고 해명했다.
우선 변제한다더니… 기약 없는 기다림만

납품한 물품의 대금조차 받지 못한 영세업체들도 있다.
생활용품을 유통하는 A사는 홈플러스로부터 1월 판매대금 8000만 원을 6월에야 받을 수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A사 측은 “우선적으로 영세업체부터 정산하겠다는 말을 믿고 기다렸지만, 우리는 빠졌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여름 이불과 쿠션을 납품하는 B사는 아예 납품을 중단했다.
과거 다른 온라인 쇼핑몰에서 미정산 피해를 본 기억이 있어, 이번에도 대금을 받지 못할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B사 관계자는 “손해를 보더라도 물량을 다시 가져오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홈플러스의 정산 기준이 불투명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같은 품목을 납품하는 업체들 사이에서도 정산 시점에 차이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매출 규모나 납품량 기준인지 명확하지 않아 현장에서는 혼란이 크다”고 설명했다.
정산이 늦어지자 22개 농축산 단체로 구성된 농축산연합회는 지난 13일 성명을 발표하고 정부의 개입을 요청했다.
연합회는 “홈플러스에 연간 1900억 원 규모의 농축산물을 납품하고 있지만, 일부 업체는 최대 100억 원까지 정산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힘 없는 쪽은 더 말 못 해”… 안타까운 현실

대형 유통업체와 협력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중소기업 입장에선, 피해를 입고도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분위기다.
한 업계 인사는 “정산이 밀려도 홈플러스가 정상화된 뒤 보복을 당할까 걱정돼 쉬쉬하는 경우가 많다”며 “특히 규모가 작은 업체일수록 더욱 말을 아끼게 된다”고 말했다.
홈플러스 측은 이에 대해 “영세업체부터 순차적으로 변제하고 있으며, 대기업 협력사는 이후 정산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미 협력사 전체에 상환 계획을 전달했으며,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양해를 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20일 서울회생법원에서 열린 ‘매입채무유동화 절차협의회’에서는 카드 매입대금도 상거래채권으로 인정해 전액 변제하기로 합의했다.
홈플러스는 “관련 채권을 회생계획에 반영해 채권단의 동의와 법원 승인을 거쳐 성실히 갚아 나가겠다”며 “개인 투자자들 역시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홈플러스의 기업회생 절차가 본격화되면서 입점업체와 납품업체들의 피해 가능성이 현실화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회생절차가 길어질 경우, 영세업체들의 자금난이 심화될 수 있다며 정부 차원의 모니터링과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