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함께 자야 잘 잔다

밤 11시, 아내는 먼저 잠자리에 들었다. 남편이 스마트폰을 보다 불을 켜고 들어오는 순간, 아내의 잠은 이미 흐트러진다.
사소해 보이는 이 장면이 노년기 수면 건강을 갉아먹는 결정적 변수라는 사실이 국내 연구로 확인됐다.
4쌍 중 1쌍만 ‘같은 시간에 잠든다’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기웅 교수 연구팀은 60세 이상 노년 부부 859쌍(1,718명)을 대상으로 취침 시간 차이와 수면의 질의 연관성을 분석한 연구 결과를 국제 학술지 ‘영국정신의학저널 오픈(British Journal of Psychiatry Open)’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8년에 걸친 장기 추적 분석을 병행해 수면 습관의 변화 추이까지 확인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부부가 같은 시간대에 잠드는 ‘동시 취침’ 비율은 전체의 23.4%, 201쌍에 불과했다. 나머지 약 76.6%, 즉 4쌍 중 3쌍은 서로 다른 시간에 잠자리에 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시 취침 부부일수록 수면의 질, 수면 효율 모두 우수했으며, 취침 시간이 어긋날수록 수면 상태가 나빠지는 경향이 뚜렷하게 관찰됐다.
먼저 잠든 쪽이 더 피해 본다…수면 잠복기 최대 53분 증가
연구에서 가장 주목받는 수치는 ‘수면 잠복기’의 변화다. 한 사람이 먼저 잠들고 배우자가 뒤늦게 침실에 들어올 경우, 먼저 잠든 사람의 수면 잠복기가 최대 약 53분까지 늘어났다.
수면 잠복기란 잠자리에 든 후 실제로 잠이 드는 데 걸리는 시간으로, 이 수치가 길어질수록 수면의 질은 떨어진다.

원인은 이른바 ‘공동 수면(dyadic sleep)’ 현상에서 찾을 수 있다. 배우자가 늦게 들어오며 침실 조명을 켜거나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움직이는 행동 자체가 이미 잠든 상대방의 수면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혼자 자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배우자의 리듬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여성에게 더 가혹한 ‘수면 불일치’…호르몬 변화가 취약성 키워
성별 차이도 두드러진다. 취침 시간이 어긋났을 때 수면 질 악화는 여성에게서 훨씬 심각하게 나타났다. 8년 장기 추적에서도 동일한 경향이 유지됐다.
취침 시간이 지속적으로 맞지 않는 부부의 경우, 여성은 수면 시간이 줄고 수면 효율이 점진적으로 하락했지만 남성에게서는 같은 연관성이 발견되지 않았다.

연구팀은 여성이 남성보다 수면 환경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데다, 노년기 호르몬 변화와 불면 증상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아 배우자의 행동이 미치는 영향이 더 크게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한국인 평균 수면 효율이 82%로 권장 수준에 못 미치는 상황에서, 노년 여성의 수면 건강은 특히 취약한 셈이다.
김기웅 교수는 “취침 시간의 일치는 수정 가능한 생활 요인 중 하나”라며 “향후 수면 장애 관리에서도 개인뿐 아니라 부부 단위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는 오는 3월 13일 ‘세계 수면의 날’을 앞두고 발표되어 더욱 주목받고 있다.
수십 년을 함께한 부부가 같은 시간에 잠자리에 드는 것. 낭만적 습관처럼 보이지만, 이제는 노년기 건강을 지키는 핵심 생활 전략으로 다시 봐야 할 때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한국에서, 수면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 속의 건강’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이번 연구에 담겨 있다.























잠좀잘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