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CIA에 물밑 협상 제안하면서
공개적으로는 “협상 없다” 메시지
강경파·외교실무진 입장차 표면화

이란이 미국 중앙정보국(CIA)에 물밑 협상을 제안하면서도 공개적으로는 “미국과 협상 없다”고 강조하는 이중 메시지를 내보내고 있다.
이는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사망 이후 권력 공백이 발생한 상황에서 이란 지도부 내 갈등과 전략적 딜레마를 드러내는 신호로 풀이된다.
뉴욕타임스(NYT)는 4일(현지시간) 중동·서방 관료들을 인용해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 다음날 이란 정보당국이 제3국을 통해 간접적으로 CIA에 접촉하며 분쟁 종식 조건을 논의하겠다고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같은 날 모하마드 모흐베르는 이란 국영방송에서 “이란은 미국과 어떤 형태의 접촉도 하지 않으며 협상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하메네이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모흐베르는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만큼 전쟁을 계속할 수 있다”며 강경 입장을 고수했다.
협상 타진과 공개 부인 사이…이란 지도부의 계산법

이란의 상반된 메시지는 내부 권력 투쟁과 전략적 모호성이 결합된 결과로 분석된다.
군사·안보 총괄권을 가진 알리 라리자니 최고국가안보회의 사무총장이 2일 엑스(X)에 “미국과 협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직접 부인에 나선 것도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중재 협상설 보도 직후였다.
아바스 아라그치 외무장관 역시 4일 “복잡한 핵 협상이 부동산 거래처럼 취급되고 큰 거짓말이 진실을 덮을 때 비현실적 기대는 충족되지 않는다”며 트럼프 행정부를 비난했다.
미국 측도 회의적이다. 미국 관료들은 트럼프 행정부나 이란 모두 단기적으로 분쟁 종식 준비가 됐다는 데 회의적이라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루스소셜에 “그들의 방공망과 공군, 해군, 리더십 모두 사라졌다. 그들은 대화를 원한다. 나는 ‘너무 늦었다’라고 말했다”고 썼다. 백악관, 이란 관료들, CIA 모두 논평을 거부했다.
하메네이 사망 후 리더십 공백…누가 이란을 통제하나

현재 이란은 하메네이 사망 이후 명확한 후계 구도가 확립되지 않은 상태다. 라리자니가 군사·안보를 총괄하고 있지만, 모흐베르를 비롯한 보수 강경파와 아라그치 같은 외교 실무진 사이의 입장 차이가 표면화되고 있다.
NYT는 “공격이 지속되는 가운데 이란 내 리더십 혼란과 물밑 접촉 시도는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이란 정부를 만들어 나갈지를 결정하는 데 있어 핵심 과제를 부각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란의 협상 타진이 사실이라면 이는 실무 정보당국 차원의 움직임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최고 권력층은 대외적으로 강경 노선을 유지함으로써 국내 통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이중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며칠째 계속되는 무력 충돌 속에서 이란은 전투 지속 의지를 보이면서도 뒤에서는 출구 전략을 모색하는 셈이다.
협상 가능성과 장기 교착 시나리오

향후 시나리오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이란이 내부 합의를 도출해 실질적 협상 테이블에 나오는 경우다. 하지만 현재로선 가능성이 낮다.
둘째,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 정권 교체를 목표로 군사 압박을 강화하는 시나리오다. 트럼프의 “너무 늦었다” 발언은 이 가능성을 시사한다.
셋째, 양측이 실익을 계산해 제한적 수준에서 교전을 중단하고 사실상의 정전 상태로 들어가는 경우다.
이란의 물밑 협상 타진은 권력 공백 속에서 생존을 모색하는 이란 지도부의 고육지책으로 읽힌다. 하지만 공개적 강경 발언과 실제 협상 의지 사이의 간극이 좁혀지지 않는 한, 중동의 불안정성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