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페인이 한국 기술을 기반으로 한 ‘스페인형 K9’를 자체 생산하는 방안을 본격 추진하면서, 유럽 대륙에서 K9 자주포의 영향력이 또 한 단계 확장되고 있다.
단순 완제품 수입이 아닌, 설계권과 생산권을 확보하는 ‘기술 주권’ 모델이란 점에서 주목된다.
지난 25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스페인 방산기업 인드라(Indra) 그룹 및 EM&E와 차세대 궤도형 자주포 개발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 협력의 핵심은 인드라가 K9 자주포에 대한 지식재산권을 확보하고, 스페인이 직접 설계한 차체에 검증된 K9A1 포탑 시스템을 결합하는 방식이다.
스페인 육군은 노후화된 M109A5E 자주포를 대체하기 위해 총 214대의 신형 자주포 도입을 계획 중이며, 이 중 궤도형 128대가 K9 기반 모델의 주요 타깃으로 거론된다.
이번 프로젝트가 성사되면 스페인은 NATO 회원국 중 5번째 K9 운용국이 된다. 한국산 자주포가 유럽 방산 시장에서 사실상 ‘표준’으로 자리잡아가는 모양새다.
‘메이드 인 스페인’ 자주포, 설계권까지 넘긴다

스페인 모델의 가장 큰 특징은 단순 기술 이전을 넘어선 ‘주권 확보’에 있다. 인드라는 차체뿐 아니라 사격통제 시스템, 전장관리체계(BMS), 화생방 방호 시스템, 자동 소화 장치까지 독자 설계·장착한다.
히혼 지역 공장에 약 1억 3000만 유로(약 2200억 원)를 투자해 현대식 조립 라인을 구축하고, 1500명 규모의 신규 고용을 창출한다는 계획이다.
포탑 시스템만 한국에서 들여오고 나머지는 스페인이 책임지는 ‘선택적 기술 주권’ 전략이다.
이는 폴란드 모델과 유사한 궤적을 그린다. 폴란드는 2022년 600문 이상의 K9 도입을 합의한 뒤, 초기 48대는 한국에서 직도입했지만 2024년부터 본격 도입된 K9PL 624문은 2026년 이후 물량부터 폴란드 현지 생산으로 전환한다.
한국 기술을 토대로 자국 방산 생태계를 키우는 방식으로, 스페인 역시 같은 경로를 밟으려 한다..
산타 바바라의 반격과 정치적 변수

물론 스페인 내부에선 반발도 존재한다. 최대 노조 CCOO는 정부가 기존 방산 기반인 산타 바바라 시스템즈를 소외시킨다며 ‘전략적 실수’라고 비판했다.
산타 바바라는 GDELS와 손잡고 피라냐 차체 기반 자주포를 제안하며 경쟁 중이다.
하지만 한화-인드라 모델이 제시한 대규모 기술 이전과 고용 창출 약속은 스페인 정부의 국방 현대화 및 산업 육성 의지와 맞물려 강력한 설득력을 확보한 상태다.
이번 사업이 최종 확정되면 궤도형 자주포 128대 외에도 탄약운반차 120대, 지휘차 11대, 구난차 21대 등 총 280여 대의 지상 플랫폼이 ‘K-방산’ 유전자를 이식받게 된다.
유럽 자주포 시장의 판도를 바꿔온 K9이, 이번엔 스페인이란 새 거점을 통해 지중해 전선까지 영향력을 확장하는 셈이다.
한국 방산의 기술 경쟁력과 현지화 전략이 만들어낸 교과서적 성공 사례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