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인 줄 뻔히 알지만
‘급전’ 필요해 손 내민 사람들
연 1200% 고금리에도 외면 못 해

지난 한 해, 약 6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제도권 금융의 문턱도 넘지 못하고 결국 불법 사금융에 손을 내밀었다. 알고도 빠질 수밖에 없던 이유, 그 속엔 우리 사회의 복잡하고 뿌리 깊은 구조가 숨어 있다.
서민금융연구원이 6월 15일 발표한 ‘저신용자 대상 설문조사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동안 불법 사금융을 이용한 저신용자는 2만9000명에서 최대 6만1000명으로 추산됐다.
이들이 빌린 금액은 약 3800억~7900억 원에 이른다. 1년 기준 원금보다 많은 이자를 내는 이들이 60%에 달하고, 연 1200% 이상의 고금리를 감당하는 사람도 약 17%에 이른다.
절박한 선택, 불법임을 알면서도

보고서는 불법 사금융의 심각성을 통계로 드러냈다. 설문 응답자 1538명 중 72.3%는 대부업체 대출을 시도했지만 거절당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고, 71.6%는 “불법임을 알면서도 급전이 필요해서 이용했다”고 답했다.
특히 청년층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2022년 7.5%였던 불법 사금융 이용 비율은 지난해 10%까지 증가했다. 일자리가 불안정한 20~30대가 생활비나 학자금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무리한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업 이용도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개인신용평점 하위 50%의 대출 승인율이 9.6%로 소폭 상승하긴 했지만, 이는 코로나 이후 줄었던 신용대출을 대부업체들이 조금씩 다시 늘린 결과일 뿐이다.
가계부채, OECD 평균 넘는 한국의 민낯

사람들이 위험한 대출에 손을 내미는 배경엔 만성적인 ‘빚 부담’이 자리하고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차규근 의원이 한국은행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24년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처분가능소득 대비 174.7%에 달했다. 이는 전 세계 주요국 중 여섯 번째로 높은 수치다.
가계부채는 줄지 않고 있다. 2023년 말 2316조 9000억 원이던 부채는 지난해 말 2370조 1000억 원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소득이 5.5% 늘어 부채 비율은 소폭 하락했지만, 절대적인 빚의 무게는 더 무거워졌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구조가 서민과 취약계층을 더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고 분석한다. 한국처럼 사회안전망이 취약한 상황에서 대출이 막히면 선택지는 많지 않다.
차 의원은 “디레버리징이 본격화되더라도 가계부채는 여전히 관리가 필요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제도권 금융의 빈틈, 누가 채울 것인가

금융당국도 이런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정책서민금융상품 등 제도권 금융 이용 가능 여부를 먼저 확인하라”고 당부했다.
특히 ‘불법사금융예방대출’처럼 정부기관이 제공하는 제도를 적극 활용하라고 강조했다.
불법 사금융 피해 예방을 위해선 미등록 대부업체 확인, 최고금리 준수 여부 점검, 계약서 보관 등이 필수다. 또한 ‘개인채무자보호법’에 따라 추심을 일시 중단할 수 있는 권한이나 채무조정 요청 권리도 있다.
서민금융연구원은 대부업의 역할 재정립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단순히 금리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대출에서 소외된 계층을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는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법정최고금리가 27.9%에서 20%로 낮아진 2018~2021년 사이, 대출 승인자는 135만 명 이상 줄었고 이 중 70만 명 가까이가 불법 시장으로 향했다는 분석도 있다.
불법 금융의 그림자 속으로 밀려나는 사람들을 줄이기 위해선, 금융 사각지대를 메우기 위한 현실적이고 적극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도가 존재하더라도 닿을 수 없다면, 실효성은 크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