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촌 친척 때문에 형사처벌?
대기업 총수들 “현실과 동떨어진 규제”
동일인 지정제 개선 요구 커져

총수와 관련된 친척이 자료를 누락했단 이유로, 그룹의 책임자까지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현행 제도에 대해 대기업 총수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기업 경영 환경은 크게 바뀌었지만, 동일인 지정제는 40년 넘게 바뀌지 않은 채 유지되고 있다. 주요 기업들은 제도의 개선 없이는 경영 정상화가 어렵다고 보고 있다.
기업 구조는 바뀌었는데… 제도는 제자리

동일인 지정제는 1980년대에 도입돼, 지금까지 공정거래법상 기업집단 규제의 기준이 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기업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동일인을 먼저 지정한 뒤, 이와 관련된 계열사를 규제 대상에 포함시킨다.
문제는 지금의 지배구조가 과거와 다르다는 점이다. 현재 대다수 대기업은 지주회사 체제로 운영되며, 경영 의사결정도 법인 중심의 이사회에서 이뤄진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는 최근 공정위에 동일인 지정제를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방안을 포함한 24건의 제도 개선 과제를 제출했다.
한경협은 “지금의 동일인 제도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낡은 틀”이라며 “개인 중심이 아닌 법인 중심 규제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도한 친인척 규제… “사실상 통제 불가능”

현행 제도는 동일인의 6촌 이내 혈족과 4촌 이내 인척까지 ‘특수관계인’으로 규정해, 동일인과 관련된 자료 제출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문제는 총수가 이러한 친인척의 재산이나 투자 내역까지 모두 파악해 보고해야 한다는 점이다. 만약 누락되면 형사처벌이 가능하다.
실제로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명예회장은 친족이 보유한 회사의 자료가 누락됐다는 이유로 공정위로부터 검찰에 고발됐다. 농심 신씨 일가도 유사한 사례로 처벌 대상이 됐다.
한경협은 “직계 가족 외의 친인척까지 동일인 관련자로 규제하는 것은 과도하며, 실질적인 지배와 관계없는 사람에게까지 책임을 지우는 구조는 개선돼야 한다”고 밝혔다.
“갈라파고스 규제”… 국제 기준과의 괴리도 심각

동일인을 자연인으로 지정하는 방식은 글로벌 기업 규제 기준과도 맞지 않는다. 대부분 국가에서는 법인을 중심으로 기업을 규제하지만, 한국은 총수 개인 중심의 규제를 고수하고 있다.
최근 쿠팡, 두나무 등은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받았지만, 이 경우에도 법적 책임 소재가 불명확하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또한 동일인 지정 기업집단으로 포함되는 기준인 ‘자산 5조 원’도 지나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경협에 따르면 해당 기준에 포함되는 계열사의 78%는 중소기업 수준으로, 실제 영향력과 무관하게 과도한 규제를 받고 있다.
“제도는 진화해야 한다”… 규제 개편 요구 확산

기업 총수가 직접 경영을 지휘하던 시대는 지났지만, 동일인 제도는 여전히 과거 방식에 머물러 있다.
경영에서 물러난 총수나, 실질적으로 관계가 단절된 친족까지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에서 제도 개선 요구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경협은 “공정거래법은 시장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하는 데 중요하지만, 기업 현실과 괴리된 규제는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해칠 수 있다”고 밝혔다.
총수 개인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책임 구조가 지속된다면, 기업의 자율성과 효율적 경영은 앞으로도 제약받을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동일인 지정제의 합리적 개편 논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