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능한 인재는 계속 떠난다
천문학적 세금 들였는데 어쩌나

인공지능(AI) 인재를 포함한 고급 인력이 줄줄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현실에 업계는 물론 정부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국가가 수억 원을 들여 양성한 인재들이 외국 기업으로 이직하면서, 남는 것은 세수 손실뿐이다.
정부는 ‘AI 3대 강국’을 목표로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고 있지만, 인재 유치나 유출 방지에는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두뇌 적자’, 갈수록 심각

대한상공회의소 SGI는 6월 17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고급 인력 해외 유출 현상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SGI가 도입한 ‘두뇌수지’ 지표에 따르면, 국내 인재의 순유출이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었다. 특히 AI 분야는 인구 1만명당 -0.36명의 순유출을 기록하며 35위에 머물렀다.
AI 산업 특성상 소수의 핵심 인재가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인재 한 명의 이탈도 산업 경쟁력에 타격이 될 수 있다.
해외로 빠져나간 전문인력은 2019년 12만 5천명에서 2021년 12만 9천명으로 늘었지만, 같은 기간 국내에 유입된 외국 전문인력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결과적으로 두뇌수지는 7만 8천 명에서 8만 4천 명 적자로 확대됐다. SGI는 “성과 위주의 보상 체계 부재, 폐쇄적인 연구 환경, 부족한 국제 협력 기회가 유출의 주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국내에서 대학까지 교육을 마친 1인의 평생 공교육비는 약 2억 1천483만 원으로 추산되며, 이들이 해외로 이주해 경제활동을 이어갈 경우 국가가 입는 세수 손실은 1인당 약 3억4천67만 원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됐다.
인재는 있는데… 떠날 이유가 넘친다

표면적인 수치만 보면 한국은 인재가 없는 나라가 아니다. 링크트인 기준으로 AI 기술을 보유한 국내 인재 비중은 이스라엘, 싱가포르 다음으로 높았다.
AI 관련 특허 수도 세계 상위권에 올라 있지만, 실질적인 인재 활용에서는 계속 뒤처진다.
김성훈 업스테이지 대표는 6월 초 정부 간담회에서 “실리콘밸리에서 뛰고 있는 한국 출신 인재들을 데려오고 싶었지만, 연봉 격차가 워낙 커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국내에서 20억 원에 가까운 몸값을 감당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정부가 절반 정도를 지원하면 국내 ai가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연봉만 문제가 아니다. 미국 실리콘밸리나 중국 선전시처럼 활발한 교류와 협력이 가능한 ‘AI 생태계’가 한국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한 전문가는 “정부가 데이터센터 등을 수도권 밖에 세우려는 시도는 AI 인재들의 의사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인재 잡으려면 ‘보여주기식’은 이제 그만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AI와 반도체 등 첨단산업 육성을 강하게 강조했고, 대선 때는 ‘AI 투자 100조 원 시대’를 공약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같은 선언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인재 양성과 인프라 구축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국가AI위원회 위원인 김두현 건국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핵심 인재는 대부분 대기업이나 해외로 향한다”며 “각 분야에서 실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융합형 인재 양성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AI 학과 신설이나 스타트업 지원이 아니라, 실무형 인재를 길러낼 수 있는 교육-기업 간 연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GPU 확보 또한 핵심 인프라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년 내 3만 장의 GPU를 확보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

하정우 바른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 공동대표는 “정부와 기업이 공동 대응해 협상 우위를 점해야 한다”며, 국가 차원의 GPU 확보 전략을 제안했다.
AI 산업의 성패는 기술보다 사람에게 달려 있다. 인재 확보와 유출 방지는 산업 경쟁력과 직결된다.
지금처럼 수조 원을 투자하면서도, 핵심 인재는 지키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된다면 ‘AI 강국’이라는 목표는 현실화되기 어렵다.
효과적인 보상, 환경 조성,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 보여주기식 정책보다 실질적 대안을 마련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