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하루 만에 사라진 신부
국제결혼의 그늘, 이젠 현실이다

“결혼 하루 만에 떠났는데 유산을 받을 자격이 있나요?”
암 투병 중이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자녀들이 마주한 건 슬픔보다 깊은 충격이었다.
이들의 아버지는 10년 전 국제결혼 중개업체를 통해 베트남 아내를 맞이했으나, 그녀는 결혼한 지 하루 만에 종적을 감췄다.
하지만 부부의 혼인 관계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고, 자녀들은 아버지의 유산이 사라진 아내에게 돌아갈 수도 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됐다.
1일 만에 사라진 아내… 남겨진 건 상처뿐

사연은 지난 18일 YTN 라디오 ‘조인섭 변호사의 상담소’를 통해 알려졌다.
사연자 A 씨는 “아버지가 10년 전 국제결혼을 했는데, 베트남 여성은 혼인신고 후 아버지 집에 도착한 다음 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당시 아버지는 이미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후 일곱 자녀와 함께 작은 식당을 운영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가족의 노력 끝에 식당은 분점을 낼 정도로 번창했고, 남은 인생을 행복하게 보내고자 했던 아버지는 국제결혼 중개업체를 통해 베트남 여성을 소개받았다.

결혼을 결심했고, 두 번의 베트남 방문 끝에 혼인신고도 마쳤지만 신부는 도착 하루 만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버지는 이후 깊은 상심 속에 지내다 암 진단을 받았고, 자녀들이 간병과 식당 운영을 함께하며 그를 돌봤다.
그는 투병 중에도 자녀들에게 “그 여성과 이혼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여성의 행방은 묘연했고, 아버지는 끝내 그녀를 만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A 씨는 “아버지가 남긴 유산이 17억 원 정도 된다. 아버지 뜻대로 그녀와 이혼시키고 싶다. 우리가 대신 이혼 소송을 낼 수 없느냐”고 상담을 요청했다.
이에 홍수현 변호사는 “재판상 이혼은 부부 당사자만이 청구할 수 있어, 사망 후에는 소송이 불가능하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한 가지 가능성은 남아 있다. 홍 변호사는 “혼인 자체가 무효였다고 주장하는 ‘혼인무효소송’은 자녀도 제기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단, 그 혼인이 애초에 진정한 부부로서의 의사가 없었던 ‘위장결혼’이라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그는 “여성이 입국 다음 날 사라졌고, 사실상 혼인 생활이 단 하루였다는 점에서 혼인의 진정성을 법원이 의심할 수 있다. 여성의 행방을 몰라도 공시송달 절차를 통해 소송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또한 상속과 관련해 “혼인무효 소송 외에도 기여분이나 상속재산분할 심판 청구를 통해 정당한 몫 이상을 요구할 수 있다”고 안내했다.
“사랑이 아니라 수단”… 국제결혼의 그림자

이런 일이 비단 A 씨 가족만의 사연은 아니다. 베트남 현지 매체와 한국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결혼을 ‘국적 취득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례는 점점 늘고 있다.
베트남 매체 ‘VN익스프레스’는 지난해 ‘한국 국적 귀화를 위한 결혼 차용’이라는 보도를 통해 베트남 여성들이 일부러 한국 남성과 결혼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이혼을 선택하는 현실을 고발했다.
방송에 출연한 20세 여성 투찐은 “한국에서 일하고 시민권을 얻기 위해 결혼을 택했다”며 “3년 후 이혼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해 충격을 줬다.
한국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동안 한국 남성과 베트남 여성의 이혼은 1215건으로, 전년 대비 8.3% 증가해 13년 만에 최대 폭의 상승을 기록했다.

또한 한국으로 귀화한 베트남 여성들이 다시 베트남 남성과 재혼하는 비율도 꾸준히 늘고 있다.
한국 여성과 베트남 남성의 결혼 건수는 2023년 기준 771건이었고, 이 중 94.4%가 재혼이었다. 이들 중 상당수는 한국 국적을 취득한 베트남 출신 여성이라는 분석이다.
한때 진정한 동반자를 만나고자 했던 남성들의 바람은 국적 취득의 수단으로 전락한 채 처참하게 무너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제결혼의 악용을 막기 위해 혼인 생활의 진정성을 검증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국제결혼이 더 이상 누군가의 악몽이 되지 않도록, 사회적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