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거래 앱으로 모인 낯선 청년들
한밤중 공원서 경찰과 도둑 놀이 열풍

한밤중 한강공원과 대학 운동장에서 낯선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처음 보는 청년 수십 명이 모여 경찰과 도둑 역할을 나눠 숨바꼭질을 하다 두어 시간 뒤 아무 일 없이 흩어지는 모습이다.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마켓과 카카오톡 오픈채팅에 ‘경도하실 분’ 모집 글이 올라오면 수백 명이 몰려 조기 마감되고, 일부 모임은 2000명 이상이 가입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른바 ‘경도'(경찰과 도둑)로 불리는 이 놀이는 2000년대 초반까지 학교 운동장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추억의 놀이였다. 그런데 최근 10대와 20대 사이에서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낯선 사람들끼리 모여 즐기는 새로운 형태로 부활했다.
참가자들은 주로 저녁 시간대에 모여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열정적으로 뛰어다니며 어린 시절의 추억을 재현한다.
디지털 세대가 찾은 아날로그 연결고리

전문가들은 이 현상을 단순한 놀이 유행이 아닌 청년층의 새로운 사회적 욕구로 분석한다. 성균관대 사회학과 구정우 교수는 이를 ‘레트로 감성의 현대적 재해석’으로 설명한다.
과거를 향수하면서도 익명성과 가벼운 관계를 선호하는 청년세대의 특성이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경도 모임 참가자들의 반응은 주목할 만하다. SNS에 올라온 후기 영상들은 조회수 300만 회를 넘어섰고, 참가자들은 “모르는 사람들과 어색했지만 몰입감이 엄청났다”, “무료한 일상에 건강한 도파민이 터진다”는 긍정적 평가를 남겼다.
특히 ‘솔로파티’ 같은 목적성 모임과 달리 부담 없이 웃고 떠들 수 있다는 점이 매력으로 꼽힌다.
흥미로운 점은 연령 제한이다. 대부분의 모임이 30대 이상 참가를 제한하는데, 이유는 ‘체력’이다. 한두 시간 내내 전력질주해야 하는 놀이 특성상 체력이 받쳐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현대 청년들이 단순한 디지털 놀이를 넘어 신체적 활동과 직접적 교류를 갈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느슨한 연대’가 만든 새로운 관계 양식

경도 열풍의 배경에는 ‘소셜 웰니스’와 ‘느슨한 연대’라는 청년세대의 새로운 관계 맺기 방식이 자리한다. 학연·지연·혈연으로 얽힌 끈끈한 관계에 부담을 느끼는 이들이 공통 관심사만으로 일시적으로 연결되는 가벼운 형태의 모임을 선호하는 것이다.
강서구에서 경도 모임을 운영하는 김서영씨는 “처음 시작할 때는 방 인원이 2~3명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200명이 됐다”며 “온라인에서 실제로 만나는 걸 상상도 못했는데, 놀이를 통해 새로운 사람도 만나고 동네 사람들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는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가 역설적으로 직접적인 만남과 신체 활동을 통한 유대감을 재발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세대 간 이해의 출발점
경도 열풍은 청년세대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이들이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해 오프라인 연결을 만들어내고, 과거의 놀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깊은 관계 대신 가벼운 연대를 추구하는 모습은 기성세대와 뚜렷이 구분되는 특징이다.
이는 단순히 놀이문화의 변화를 넘어 청년세대가 경험하는 고립감과 연결 욕구, 그리고 그들이 찾아낸 해법을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이 일시적 유행에 그치지 않고 청년층의 새로운 여가 문화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다.
공동체성과 개인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이들의 선택이 향후 어떤 사회 문화적 변화를 이끌어낼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