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에서 태어나길 잘했네” … 20년 만의 결단, 정부 발표에 서민들 ‘감동의 눈물’

취약계층 채무자에 ‘5% 상환 면제’ 확대
보이스피싱 피해·미성년 상속자도 포함
도덕적 해이보다 실질적 구제에 방점

채무 2천만 원을 갚고 싶다며 신용회복위원회를 찾은 78세 독거노인은 기준 초과로 도움을 받지 못했고, 보이스피싱으로 3천600만 원의 빚을 떠안은 피해자는 ‘도덕적 해이 방지’ 조항에 가로막혀 상담실을 떠나야 했다.

빚에 짓눌린 서민들의 절박한 현실 앞에서 정부가 제도의 문턱을 낮추는 결정을 내렸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10월 23일 서울 중구 중앙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를 찾아 서민금융과 채무조정 현장 간담회를 열고, ‘청산형 채무조정’의 지원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앞으로는 기존의 1천500만 원 한도를 넘는 채무자도 일정 조건을 충족할 경우, 남은 빚을 면제받을 수 있게 된다.

지원 기준 확대…5%만 갚아도 면제

‘청산형 채무조정’은 고령자, 기초수급자, 장애인 등 사회 취약계층이 3년 이상 성실히 상환할 경우, 남은 채무를 면제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현재는 채무 원금이 1500만 원 이하일 때만 적용되지만, 이번 개선으로 이 한도가 상향될 예정이다.

이는 과거 7년 이상 연체한 5000만 원 이하 채무를 조정하는 ‘새도약기금’ 사례를 반영한 것으로, 실제 채무자 구제 폭이 넓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채무의 5%만 갚아도 사실상 면제받는 구조다.

보이스피싱 피해·미성년 상속자도 구제 대상

특히 보이스피싱과 같은 금융 범죄 피해자에 대한 배려가 눈에 띈다. 그간 ‘신규 대출 비중이 전체 채무의 30%를 초과하면 조정 신청이 불가하다’는 규정이 적용돼 피해자들이 채무조정에서 배제됐다.

하지만 앞으로는 범죄 피해로 인한 채무는 신규 채무에서 제외해 조정 신청이 가능해진다. 또 부모의 빚을 떠안고 추심에 시달리는 미성년 상속자 역시 이번 개선안에 포함됐다.

일정 금액을 3년 이상 갚을 경우, 기존 성인 취약계층처럼 나머지 빚을 탕감받게 된다.

“시장 불완전성 보완하는 공적 역할 강조”

일각에서는 ‘5%만 갚고 면제받는 제도’가 도덕적 해이를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이 위원장은 “채무조정 제도는 지난 20년간 운영돼 왔지만, 우려만큼의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신용평가가 완벽하지 않아 저신용자들은 정작 돈을 빌리기 어려운 ‘금리 단층’에 빠지고 있다”며, “서민금융은 시장의 한계를 메우는 공적 장치로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앞으로도 과도한 채권자 의결권 제한, 고금리 대부계약 무효화 홍보 강화 등 추가 개선도 병행해 나갈 방침이다. 채무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번 제도 개선이 작은 숨통이 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