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표 기업마저 “70년 만에 첫 백기”… 사상 초유의 결단에 업계 ‘비상’

글로벌 위기 속 현대제철의 충격적 선택
철강산업 구조조정 신호탄 되나

국내 2위 철강기업 현대제철이 사상 초유의 결단을 내렸다.

창사 이래 처음으로 부분 직장폐쇄를 단행한 이후, 기술직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글로벌 경기 둔화와 공급 과잉으로 인해 철강업계가 직면한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현대제철은 오는 14일까지 포항공장의 기술직 근로자 1200명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을 계획이다.

이번 희망퇴직은 철강업계 전반에 걸친 위기의 반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건설 경기 침체, 중국의 저가 철강 공세, 보호무역주의 강화 등으로 업계 전반의 수익성이 악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 후 철강 관세가 다시 부과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현대제철은 물론 국내 철강업계 전체가 추가적인 부담을 안게 될 전망이다.

공급 과잉·수요 둔화… 철강업계 전반이 흔들린다

현대제철이 극단적인 결정을 내린 배경에는 글로벌 경기 둔화, 중국발 공급 과잉, 국내 건설 경기 침체 등 복합적인 위기가 겹쳐져 있다.

중국이 저가 철강을 대거 시장에 풀면서 국내 철강업체들은 가격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

지난해부터 포항 2공장은 이미 축소 운영에 들어갔으며, 현재는 제강 공정에서 쇳물만 생산하는 상태다.

포스코홀딩스와 현대제철의 실적도 급감했다.

포스코홀딩스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38.5% 감소한 2조1700억 원을 기록했으며, 현대제철의 영업이익은 60.6% 줄어든 3144억 원에 그쳤다.

여기에 트럼프 행정부가 2018년에 도입한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철강 관세(25%)가 다시 적용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한국 철강업체들은 수출 경쟁력 약화라는 또 다른 난관을 맞게 됐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 상황이 지속되면 국내 철강산업 자체가 큰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며 “친환경 철강과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대제철 노사 갈등… 자동차 업계도 ‘초긴장’

현대제철의 위기는 단순히 철강업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노조와의 갈등이 심화하면서 자동차 산업에도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현대제철 순천공장의 용융 아연 도금 라인에서는 지난 6일부터 부분 파업이 시작됐다.

노조는 지난해 9월부터 이어진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협상을 마무리 짓지 못한 채 강경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사측은 기본급 10만 원 인상과 함께 성과급으로 ‘기본급의 450%+1000만 원’을 제안했지만, 노조는 “현대차그룹 내 다른 계열사에 비해 성과급이 적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에 현대제철은 창사 이후 처음으로 직장폐쇄 카드를 꺼내 들었다.

당진제철소의 냉연 공장 일부가 지난달 24일부터 직장폐쇄 조치가 내려졌으며, 노조가 파업을 철회하지 않는 한 폐쇄 조치는 유지될 전망이다.

냉연강판 생산 차질은 자동차 업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현대제철이 생산하는 냉연강판은 연간 600만 톤 규모인데, 이 중 현대차·기아로 공급되는 물량이 400만 톤에 달한다.

현재까지는 2~3개월치 재고가 확보된 상태지만, 파업이 장기화할 경우 자동차 생산 라인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노사 간 대립이 계속되면 결국 자동차 업계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며 “협상이 조속히 타결되지 않으면 더 큰 피해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 철강업계 지원 방안 마련할까

이강덕 포항시장은 5일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와 만나 철강업계 위기 극복을 위한 정부 차원의 지원을 요청했다.

이 시장은 “지역 철강산업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며 “여야정이 협력해 실질적인 대응책을 마련해달라”고 강조했다.

정부도 철강산업 위기 대응책을 검토 중이지만, 업계의 불확실성이 높은 만큼 실질적인 지원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현대제철의 희망퇴직 결정과 노사 갈등이 철강업계를 넘어 한국 산업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정부의 대응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