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적자에 놀란 업계
환호 속 위기감 커지는 이유

전기차 시장의 침체 속에서도 LG에너지솔루션이 1분기 시장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실적을 발표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1분기 영업이익 3747억 원을 기록했다고 7일 공시했다. 이는 지난해 동기 대비 138.2% 증가한 수치이며, 시장 기대치(894억 원)의 네 배가 넘는다.
하지만 그 이면엔 미국 정부의 생산세액공제(AMPC)가 있었다.
해당 분기 AMPC 혜택은 전분기 대비 21% 늘어난 4577억 원으로, 이를 제외하면 실질 영업이익은 -830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삼성SDI와 SK온은 이보다도 상황이 어둡다.
삼성SDI는 지난해 1분기 2674억 원의 흑자를 냈지만, 올해는 3587억 원의 적자가 예상된다. SK온도 약 3000억 원 규모의 손실을 낼 것으로 보인다.
국내 배터리 3사는 공통적으로 전기차 수요 정체, 보호무역 장벽, 세제 혜택 의존 구조 등 외풍에 흔들리고 있다.
특히 미국 공장 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삼성SDI와 SK온은 AMPC 효과도 제한적이다.
DB투자증권 안희수 연구원은 “LG엔솔이 강세를 보이고 있지만, 제너럴모터스(GM)의 주요 EV 모델이 멕시코에서 생산되면서 향후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점유율은 하락… 중국 업체는 빠르게 추격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내 배터리 3사의 시장 점유율까지 줄어들었다.
SNE리서치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2월 글로벌 EV 배터리 총 사용량은 129.9GWh로 전년보다 40.3% 증가했다.
하지만 국내 3사의 점유율은 17.7%로, 전년보다 5.5%포인트 하락했다.
LG엔솔은 8.5% 증가한 12.7GWh를 기록했지만, 점유율은 9.8%로 3위에 머물렀다. SK온은 점유율 4.7%로 4위, 삼성SDI는 3.2%로 8위까지 밀려났다.

중국 기업들은 거침없는 성장세다.
CATL은 49.6GWh를 기록하며 1위(38.2%) 자리를 굳건히 지켰고, BYD는 81%나 성장하며 점유율 16.9%로 2위를 유지했다.
CALB와 고션도 각각 6위와 7위로 뛰어올랐으며, 일본 파나소닉은 5위 자리를 지켰다.
SNE리서치는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정책 복원 움직임 등으로 북미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며, “공급망 다변화와 현지 생산 전략이 향후 경쟁의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기술력으로 승부수… 美 현지화 전략 본격화

이러한 상황에서 국내 배터리 3사는 ‘미국 현지화’로 해법을 찾았다.
LG에너지솔루션은 ‘선진입’ 효과를 기대하며 미국 내 공장 확장을 지속하고 있다 JV 포함 총 7개의 생산기지를 확보했고, 애리조나에 원통형 배터리 전용 공장도 건설 중이다.
삼성SDI는 스텔란티스와의 합작사 SPE 1공장을 조기 가동했으며, 2공장과 GM 합작공장도 추가로 짓고 있다. SK온도 현대차와 함께 현지 생산을 강화하고 있다.
유진투자증권 한병화 연구원은 “장기적으로 관세 장벽이 높아지면 현지 생산 역량이 경쟁력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기술 경쟁력 확보를 위한 포트폴리오 강화도 이어지고 있다.
삼성SDI는 국내 업체 중 처음으로 46파이 차세대 배터리를 양산하기 시작했고, LG엔솔은 테슬라·리비안 등과 공급 계약을 맺으며 시장을 선점 중이다.
또한 LG엔솔은 GM과의 합작 공장 건물 일부를 취득하는 등 기존 기지를 효율화하고 있으며, 미국과 폴란드에서 에너지저장장치(ESS) 배터리 생산도 본격화하고 있다.
구광모 “지금이 골든타임”… 배터리 중심 재편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지난달 열린 주주총회에서 “지금이 변화와 혁신의 골든타임”이라며 배터리 산업을 그룹의 핵심 성장축으로 명확히 밝혔다.
그는 “AI, 바이오, 클린테크 중심의 신성장 동력을 키워가야 한다”며, 특히 차세대 배터리와 공정기술의 혁신에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전략은 실제 성과로도 이어지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최근 글로벌 에너지 관리 기업 ‘델타 일렉트로닉스’와 약 1조 원 규모의 ESS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LG엔솔은 미국 미시간 홀랜드 공장에서 올해 하반기부터 LFP 배터리 양산에 들어간다.

여기에 20억 달러(약 2조 9000억 원) 규모의 외화채 발행에도 성공하며 공격적인 투자 여력도 확보했다.
소재 밸류체인 확보를 위한 벤처 투자도 활발하다. 리튬 추출 스타트업 ‘서밋 나노테크’와 고성능 양극재 기업 ‘액트아이온’에 시리즈A 투자를 진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1분기 실적은 기대 이상이었지만, 경쟁 심화와 점유율 하락 흐름 속에서 이를 이어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글로벌 시장에서의 입지를 지키기 위해선 보다 근본적인 경쟁력 확보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