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도 수개월을 기다려야 겨우 잡히는 대형병원 진료 예약, 그 대기실 안에도 ‘다른 문’이 존재한다.
돈의 많고 적음이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의료 현장에서조차 차별의 기준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 수치로 드러나며, 공공의료의 근본적 역할에 대한 물음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연회비 2,600만 원…국가 중앙병원의 ‘프리미엄 의료’
논란의 핵심에 선 곳은 대한민국 최상위 공공의료기관인 서울대병원이다. 2025년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서울대병원 강남센터는 연회비 최대 2,600만 원에 달하는 ‘프리미어 CEO’ VIP 회원제를 운영해 왔다.
이 프로그램 가입자에게는 전담 주치의의 맞춤형 건강검진, 전용 VIP룸, 전담 간호사 코디네이션, 본원 외래 진료 우선 연계 서비스까지 제공된다.
이 고가 검진 프로그램을 통해 서울대병원 강남센터가 최근 3년간 올린 연평균 수입은 601억 원에 이른다. 단순 부대 사업의 수준을 훨씬 넘어선 규모이며, 이 수익을 위해 병원의 핵심 자원인 교수진 다수가 VIP 검진에 집중 투입된 것으로 확인됐다.
병상 위기에도 VIP는 20.8일 입원…수치로 드러난 격차
의료 자원 배분의 불균형은 입원 병상에서 더욱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윤 의원실이 공개한 2020~2025년 서울대병원 특실 입원 현황에 따르면, 일반 특실 환자의 평균 입원일수는 5.9일인 반면 VIP 회원의 평균 입원일수는 8.1일로 집계됐다.
병상 하나가 곧 생명의 문제였던 코로나19 대유행기인 2021년, 일반 환자의 평균 입원일수가 4.8일로 줄어드는 동안 VIP 회원의 평균 입원일수는 오히려 20.8일로 급증했다.
전국적인 병상 부족 사태 속에서 한 VIP 회원이 특실에 무려 464일 동안 장기 입원한 사례까지 공개되며 공분이 들끓었다. 가장 위급한 시기에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 병상을 내어줘야 했던 현실이 수치로 증명된 셈이다.
공공병원의 수익 논리…그러나 구조적 모순은 지속
병원 측은 VIP 검진 등 부대 사업의 수익이 병원 운영과 연구 재원, 필수의료 적자 보전 등 공익적 목적에 쓰인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보건복지부 조사에서도 상급종합병원 외래 진료 대기기간이 30일 이상인 환자가 상당수인 현실에서, 고액 검진 회원에게만 본원 외래 우선 연계가 제공되는 구조는 ‘의료 접근성의 이중 창구’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공공병원이 스스로 의료 불평등의 진입 장벽을 높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필수의료 인력 부족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른 지금, 교수진이 VIP 검진 사업에 집중 배치되는 구조는 응급·중증 환자 진료 공백이라는 또 다른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공공의료의 자원이 지불 능력 있는 소수에게 집중되는 구조가 고착될수록, 그 피해는 의료 자원에 접근조차 어려운 취약 계층에게 돌아간다는 우려가 크다.
돈이 있으면 다른 문으로 들어가는 병원, 그것이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 의료기관이라면 더욱 심각한 문제다. 연회비 2,600만 원짜리 ‘프리미엄 의료’가 공공병원에서 버젓이 운영되는 현실은, 대한민국 의료 체계가 지향해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를 다시 묻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