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O리그 통산 최다 안타 기록 보유자 손아섭이 2026시즌을 앞두고 유례없는 계약 난항을 겪고 있다.
2025년 11월 8일 FA 자격이 승인된 21명의 선수 중 은퇴를 선언한 황재균을 제외하고 손아섭만이 아직 계약서에 도장을 찍지 못했다.
이미 한화 이글스의 호주 스프링캠프는 불발됐고, 2월 중순 예정된 오키나와 2차 캠프마저 불투명한 상황이다.
손아섭의 계약 지연은 단순한 협상 장기화가 아니라 베테랑 선수 시장의 구조적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2025시즌 5억원의 연봉을 받았던 그는 한화로부터 대폭 삭감된 단년 계약안을 제시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손아섭이 전년도 풀타임을 소화하며 FA 자격을 얻었음에도 이 같은 제안을 받았다는 점이다.
과거 부상이나 극심한 부진으로 시즌을 제대로 뛰지 못한 선수들과 달리, 정상적으로 활동한 선수가 이처럼 가혹한 조건을 마주한 전례는 찾기 어렵다.
시장 타이밍과 전력 변화가 만든 완벽한 역풍

손아섭이 직면한 가장 큰 장벽은 시장 타이밍이다.
FA 승인 후 3개월이 지난 현재 10개 구단 모두 전력 구상을 마무리했고, 19명의 FA 선수들이 이미 새 둥지를 찾았다. 타 구단 이적 시 발생하는 보상금 7억 5000만원(2025시즌 연봉의 150%)은 추가 부담 요소다.
손아섭의 안타 생산 능력은 여전히 리그 최상위권이지만, 급격히 떨어진 장타력과 외야 수비 범위 축소는 구단들의 투자 의욕을 꺾는 결정적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화 내부 상황도 손아섭에게 불리하다. 구단은 오프시즌 좌타 거포 강백호를 4년 총액 100억원에 영입하며 공격 라인업을 재편했다.
2017년 롯데와 4년 98억원, 2021년 NC와 4년 64억원의 계약을 체결했던 손아섭의 타선 내 위상은 크게 축소됐다. 구단 관계자들은 “전력 운영의 효율성을 고려할 때 베테랑 선수에 대한 재평가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90% 삭감의 역사, 그러나 손아섭은 다르다

KBO리그 역사에서 연봉 90% 이상 삭감 사례는 드물지만 존재한다. 박명환은 2011시즌을 앞두고 5억원에서 5000만원으로, 이택근은 2019시즌 후 같은 비율로, 박석민은 2023시즌 7억원에서 93% 삭감된 5000만원에 계약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부상이나 개인사로 전년도 정규시즌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반면 손아섭은 2025시즌 풀타임을 뛰며 NC에서 한화로 트레이드된 뒤 한국시리즈 준우승까지 경험했다.
야구계 관계자들은 “성적을 내고도 이 정도 조건을 받는 경우는 전례가 없다”며 “고령 선수 시장의 패러다임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분석했다. 손아섭이 한화의 제안을 수용할 경우 베테랑 선수들의 협상력은 더욱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
시간은 선수의 편이 아니다

손아섭 앞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놓여 있다. 한화의 단년 대폭 삭감안을 받아들이거나, 은퇴를 고려하는 것이다. 한화는 2월 중순 오키나와 2차 일본행 스프링캠프를 시작한다.
이 일정마저 놓친다면 2026시즌 개막 준비에 심각한 차질이 불가피하다. 일본 진출이나 독립리그 등 제3의 선택지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손아섭의 결정은 단순히 개인의 진로를 넘어 KBO 베테랑 시장의 미래를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구단들이 과거 실적보다 현재 가치와 미래 리스크를 우선시하는 흐름이 뚜렷해지는 가운데, 손아섭의 선택이 향후 고령 선수들의 협상 기준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 야구 역사에 길이 남을 안타 기록의 주인공이 맞이한 냉혹한 현실은, 프로 스포츠 시장의 냉정한 논리를 다시 한번 일깨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