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지리자동차 산하 프리미엄 브랜드 지커(Zeekr)가 1억 원에 육박하는 대형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SUV ‘8X’를 출시하며 국내 수입 럭셔리 SUV 시장에 도전장을 던졌다. 단순히 가성비를 앞세운 중국차가 아니라, 1,380마력과 900V 초급속 충전이라는 파격 스펙으로 제네시스 GV80과 렉서스 RX의 텃밭을 직접 겨냥했다.
출시 30분 만에 1만 대 주문이 쏟아진 중국 현지 반응은 단순한 화제성이 아니다. 프리미엄 세그먼트의 경쟁 공식이 브랜드 이름값에서 기술 스펙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탄이다.
1억 원짜리 중국차, 스펙은 포르쉐급
지커 8X의 최상위 트림인 3모터 블랙 에디션의 현지 가격은 7만 3,467달러, 한화로 약 1억 100만 원이다. 옵션을 더한 제네시스 GV80 3.5 가솔린(9천만 원대 중반), 렉서스 RX 450h+(1억 993만 원)와 예산이 정확히 겹친다.

스펙 뚜껑을 열면 격차는 더욱 선명해진다. 3개의 모터를 결합해 합산 출력 1,380마력을 발휘하며,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단 2.96초에 도달한다. 1억 5천만 원을 호가하는 포르쉐 카이엔 터보 S E-하이브리드(680마력), BMW XM(738마력)보다 두 배 가까운 출력이다.
주행거리 역시 배터리와 엔진을 합산해 최대 1,416km에 달한다. 55.1~70kWh 대용량 배터리를 탑재했음에도 900V 고전압 아키텍처 덕분에 단 9분의 초급속 충전이 가능하다. 통상적인 플러그인 하이브리드가 완속 충전에 머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기술력이다.
제네시스·렉서스의 빈틈을 파고들다
지커 8X가 정조준한 약점은 명확하다. 제네시스 GV80은 아직 하이브리드 또는 PHEV 모델을 내놓지 못한 상태로, 연비 부담을 고스란히 오너가 감수해야 한다. 렉서스 RX 450h+와 볼보 XC90 PHEV는 PHEV 모델이 존재하지만 완속 충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해, 급속 충전 인프라를 적극 활용하는 운전자에게는 실용성이 제한적이다.

지커는 2021년 지리자동차 산하 브랜드로 출범한 이후 올해 초 전년 대비 80% 이상의 판매 성장을 기록 중이다. 볼보와 공동 개발한 CMA·SPA 플랫폼 기반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자율주행 분야에서는 Mobileye와 협력해 레벨 2+ ADAS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고급 가죽 소재와 대형 디스플레이로 채운 실내 구성도 국내 럭셔리 세그먼트 수요층의 눈높이를 겨냥했다.
스펙 너머의 딜레마, 5060 소비자의 선택은
한국 시장에서 지커의 첫 진출 모델은 7X 페이스리프트(2026년형)이며, 이후 1,300마력급 6인승 플래그십 PHEV인 9X의 국내 출시 가능성도 업계에서 거론되고 있다. 기술 스펙만 놓고 보면 8X는 흠잡을 곳이 없는 선택지지만, ‘중국산 배지에 1억 원’이라는 심리적 장벽은 여전히 높다.
하차감과 사회적 시선을 중시하는 5060 소비자라면 탄탄한 AS망과 이름값을 갖춘 제네시스 GV80이 현실적으로 가장 안전한 판단이다. 잔고장 없는 내구성과 조용한 승차감을 우선시한다면, 오랜 하이브리드 노하우를 축적한 렉서스 RX가 여전히 합리적인 대안이다.
지커 8X의 등장은 단순한 중국차 진출 이벤트가 아니다. 브랜드 프리미엄이 아닌 기술 스펙이 경쟁의 중심축으로 이동하는 프리미엄 SUV 시장 재편의 서막으로, 제네시스와 렉서스가 전동화 전략을 서둘러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긴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