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13일, 정부는 1997년 유가 자유화 이후 처음으로 석유 최고가격제를 꺼내 들었다. 이 덕분에 중동 전쟁 발발로 한 달 새 유럽 경유값이 32% 폭등하는 동안 한국은 8% 상승에 그쳤다.
하지만 2차 최고가격제 시행 직후 서울 휘발유 평균 가격은 오히려 2,000원을 돌파했다. 2022년 7월 이후 3년 8개월 만이다. 가격을 억누르려는 정부와 시장의 줄다리기가 역설적 결과를 낳고 있다.
8일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3월 넷째 주 기준 유럽 20개국 평균 경유 가격은 리터당 3,539원으로 한국(1,816원)의 2배에 육박했다.
3월 첫째 주 2,686원 대비 31.75% 급등한 반면, 한국은 같은 기간 1,680원에서 8.05% 오르는 데 그쳤다. 최고가격제 시행 1주일 만인 3월 셋째 주에는 전국 휘발유 평균이 전주 대비 72.3원 떨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가격 억제’에는 보이지 않는 대가가 따랐다.
가격표 뒤에 숨은 재정 출혈

정부의 석유 최고가격제는 시장 가격과 상한선의 차액을 국가 재정으로 메우는 구조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훌쩍 넘긴 상황에서 브렌트유는 109.03달러, WTI는 111.54달러까지 치솟았다.
업계 추정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풀리더라도 원유 수급과 정유 공장 정상화까지 최소 3개월이 걸린다. 장기화할수록 재정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더 큰 문제는 시장 왜곡이다. 산업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최고가격제가 장기화할 경우 재정 부담이 커지고 시장 물량이 축소되는 등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며 제한적 활용을 권고했다.
업계 관계자는 “사태 장기화에 대비해 내수 소비를 아끼고 공급선을 추가 확보하는 등 중장기적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일본은 보조금, 유럽은 뒤늦은 추격

같은 시기 일본은 다른 방식을 택했다. 지난달 19일부터 정유사에 휘발유 리터당 30.2엔(약 290원)의 보조금을 지급했다.
그 결과 3월 넷째 주 일본의 경유 가격은 1,559원, 휘발유는 1,769원으로 한국보다 낮아졌다. 보조금은 재정 부담은 있지만 시장 물량 축소 리스크가 적다.
반면 한국의 최고가격제는 2차 시행 시 가격을 소폭 올렸음에도 전국 유가가 일제히 반등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유럽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체코는 8일부터 주유소 마진을 제한하고, 폴란드는 석유류 세율 인하를 결정했다. 네덜란드(4,278원), 덴마크(4,118원) 등 고가 국가들이 집중됐던 유럽 국가들도 가격 억제책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하지만 최저가 국가인 슬로바키아(2,719원)조차 한국보다 900원 이상 비싼 상태다.
‘버티기’의 한계, 다층 방어로 전환해야

산업연구원은 유류세 인하, 취약계층 직접 지원, 도입선 다변화 등 다양한 정책 수단 병행을 제안했다. 현재 한국은 중동 원유 의존도가 높아 호르무즈 해협 리스크에 취약하다.
업계 관계자는 “내수 소비를 아끼고 공급선을 추가 확보하는 등 중장기 대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가격 억제는 분명 단기 효과를 냈다. 유럽이 32% 오를 때 8%로 막아낸 것은 서민 생활 안정에 기여했다.
하지만 재정 출혈과 시장 왜곡, 그리고 2차 시행 후 급반등이라는 역설이 보여주듯, 최고가격제만으로는 중동 사태 장기화에 대응할 수 없다.
시장에서는 “가격표는 잡았지만 구조는 더 취약해졌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에너지 안보의 근본적 체질 개선 없이는 다음 위기 때 더 큰 충격을 피할 수 없다는 경고다.











그래서 재정 적자가 커지니까 석유값을 업계 자율로 맡기자는 얘기야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