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님께 죄송하지만”… 추석에 펼쳐진 ‘이상한 풍경’, 집집마다 “이래도 되는 건가요”

차례 줄이고 여행 떠나는 추석
긴 연휴, 가족 아닌 ‘나’ 중심
달라지는 명절 풍경, 이유는

올해 추석 연휴,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는 응답이 60%를 넘어섰다. 명절이면 당연하던 전통 의례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

대신 여행이나 휴식을 선택하는 이들이 늘면서, ‘명절의 의미’가 가족 중심에서 개인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상보다 ‘나’… 달라진 명절의 의미

청주에 사는 윤 모 씨(40)는 14년간 명절마다 수원, 제천, 청주를 오가며 제사와 성묘를 반복해왔다. 왕복 350㎞의 이동과 명절 음식 준비, 설거지는 고된 일이었다. 윤 씨는 “1년 치 집안일을 하루 만에 하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가족끼리 모이지 않는 분위기가 익숙해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큰집만 차례를 지내기로 하면서 윤 씨는 이동하지 않게 됐다며, “식비 부담이나 잠자리 문제도 있어서, 간소한 제사에 모두 동의한 분위기”라고 말했다.

롯데멤버스가 지난 8월 전국 성인 1천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4.8%가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고 답했다.

지난해보다 16.4%포인트 증가한 수치로, 응답자 중 47.4%는 추석 연휴에 ‘여행을 떠난다’고 했다.

명절 증후군 없는 명절… 사라지는 ‘가족의 의무’

명절마다 음식 준비와 손님 응대로 바빴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가족 구성원 간의 이해와 합의로 부담을 줄이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이 모 씨(43)는 “시댁 식구들이 워킹맘이라는 점을 배려해주면서 제사를 성묘로 대체하게 됐다”고 전했다. 그는 “예전에는 명절이 다가오면 부담부터 컸는데, 이제는 그런 스트레스가 줄었다”고 말했다.

청주의 한 정신과 의사는 “과거에는 명절 직전 두통이나 위장 장애를 호소하는 환자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이런 명절 증후군 사례가 확연히 줄었다”며 “오히려 시부모 세대가 자녀 눈치를 본다며 상담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의무’에서 ‘선택’으로… 명절이 변하는 이유

이 같은 변화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인 흐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수도권 인구 집중으로 고향이 사라진 사람이 많아졌고, 대가족 중심의 문화도 점점 약화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가족보다 개인의 삶을 우선시하는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명절 풍습도 달라졌다”며 “새로운 문화적 전환이 없다면 이런 흐름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전국 성인 1천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변화는 확인된다. 올해 추석에 차례상을 차린다는 응답은 40.4%로, 2016년(74.4%)보다 34%포인트 감소했다.

차례상 준비 방식도 변했다. ‘전통 예법에 맞춰 간소화한다’는 응답이 58.4%로 가장 많았고, ‘가족이 좋아하는 음식 위주로 준비’한다는 답변도 증가했다. 이제는 조상의 기호보다 가족의 현실과 편의를 우선시하는 추세다.

추석 차례와 같은 전통 의례를 지키는 가정은 줄고 있다. 대신 각자의 방식으로 명절을 보내며, 가족 중심이었던 명절 문화가 점차 개인 중심으로 이동하는 모습이다.

인구 구조 변화와 가치관의 전환이 맞물리면서, 앞으로도 이런 흐름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