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은 앞섰는데 동맹에 졌다”…9조 5천억 호주 호위함 수주전, K-방산 ‘완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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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 탑재량도, 납기 대응력도 앞섰다. 그런데도 졌다. 호주의 약 9조 5,000억 원짜리 차기 호위함 수주전에서 한국 방산이 일본에 완패했다. ‘스펙’이 아닌 ‘동맹’이 심판 역할을 한 순간이었다.

호주 정부는 노후화된 안작(Anzac)급 호위함을 대체하기 위해 추진한 ‘SEA 3000’ 프로젝트의 파트너로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을 최종 낙점했다.

약 100억 호주달러(9조 5,000억 원) 규모의 이 사업은 범용 호위함 11척을 도입하는 대형 프로젝트다. 한국은 대구급·충남급 호위함을 내세워 유력 후보로 경쟁에 뛰어들었지만 끝내 뒤집지 못했다.

이번 패배는 단순한 수주 탈락이 아니다. ‘K-방산 가성비 공식’의 한계를 국제 무대에서 정면으로 드러낸 사건으로, 방산 수출 전략 전반의 재검토를 강요하는 쓴 경고장이 됐다.

호주, 오커스 핵잠수함 건조·유지보수 시설 건설에 11조 투입 | 연합뉴스
호주, 오커스 핵잠수함 건조·유지보수 시설 건설에 11조 투입 | 연합뉴스 / 연합뉴스

낙찰된 미쓰비시중공업의 개량형 모가미급 호위함은 첨단 자동화 기술을 대거 적용해 기존 호위함의 절반 수준인 약 90명의 승조원만으로 운용이 가능하다.

저출산으로 병력 부족에 시달리는 호주 해군에게 이 특성은 결정적인 매력 요소로 작용했다. 무장 탑재량과 납기 대응력에서는 한국 함정이 앞선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지만, 실제 운용 현실을 반영한 자동화 기술이 판도를 뒤집은 셈이다.

계약 구조도 호주의 전략적 이해를 반영한다. 전체 11척 가운데 선도함 3척은 일본 내 조선소에서 건조해 인도하고, 나머지는 기술 이전을 통해 호주 현지에서 건조하는 방식이다. 단순 구매가 아닌 방위 산업의 내재화(localization)를 동시에 확보한 구조다.

전문가들은 이번 수주전의 진짜 승패 요인으로 ‘동맹의 밀도’를 꼽는다. 미국·일본·호주는 중국의 해양 팽창을 견제하기 위해 쿼드(Quad)를 중심으로 강력한 3국 안보 협력 체제를 구축해 왔다. 유사시 무기 체계의 호환성과 군사 정보망의 완벽한 연동이 핵심인 이 구도에서, 호주가 전략적 밀착도가 낮은 한국보다 일본의 손을 들어준 것은 사실상 예정된 수순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호주 "10조원 함정 도입 미쓰비시重 선택"…日 첫 호위함 수출(종합) - 뉴스1
호주 “10조원 함정 도입 미쓰비시重 선택”…日 첫 호위함 수출(종합) – 뉴스1 / 뉴스1

일본의 방산 정책 전환도 이번 결과를 뒷받침한다. 일본은 2014년 ‘방위장비 이전 3원칙’을 제정해 무기 수출의 족쇄를 풀기 시작했고, 잠수함·레이더 등 부분 장비 수출을 타진하던 단계를 넘어 이번에는 70억 달러짜리 완성형 대형 군함 수출을 성사시켰다. 전후 평화헌법 체제 아래 무기 수출을 금기시해온 일본이 아시아·태평양 방산 시장의 거인으로 단숨에 부상한 순간이다.

K-방산, ‘무기 판매자’에서 ‘안보 파트너’로 진화해야

방산업계는 이번 탈락이 K-방산의 성장 방정식을 근본적으로 흔드는 사건이라고 진단한다. 성능과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개별 무기를 파는 전통적 세일즈 방식만으로는, 최상위 안보 동맹을 무기로 내세우는 강대국들과의 경쟁에서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본이 본격적으로 방산 빗장을 열고 수출 전선에 가세하면서, K-방산이 독주하던 시대는 사실상 막을 내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K-방산이 나아갈 방향은 분명하다. 단순한 무기 공급자를 넘어 구매국과 지정학적 이익을 공유하는 안보 파트너로 진화하는 것이다. 이번 호주 사업의 패배는 K-방산이 가격과 납기라는 무기만으로는 이길 수 없는 시대에 진입했음을 냉혹하게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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