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 사는 건 옛말”
‘이 세대’ 이혼, 남 일이 아니다

30년을 함께한 노부부가 이혼 상담소를 찾는 비율이 20년 전보다 4배 이상 증가했다.
작년 한국가정법률상담소의 이혼 상담 통계에 따르면, 60대 이상 남성 상담자 비중이 전체의 49.1%로 거의 절반에 육박했다. 여성도 22.1%로 2005년 5.8%에 비해 급증했다. 장기 결혼 관계가 더 이상 ‘백년해로’를 보장하지 못하는 시대, 부부 갈등의 실체를 들여다본다.
작년 총 5만 2,037건의 가족 상담 중 이혼 관련 상담은 5,090건으로 전체의 24.7%를 차지했다. 흥미로운 점은 표면적 이혼 사유와 근본 원인의 괴리다.
여성은 ‘남편의 부당 대우와 폭력'(55.1%)을, 남성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56.7%)를 최다 사유로 꼽았지만, 상담소 측은 이면에 ‘부부 간 소통 단절’이 자리한다고 분석했다.
돈·육아 뒤에 숨은 진짜 이유

이혼 상담에 나타나는 명목적 사유는 다양하다. 경제 갈등, 시댁·처가 문제, 생활 습관 차이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상담 전문가들은 이를 ‘표면적 트리거’로 본다.
남성 상담자의 36.5%가 장기별거를 이유로 들었고, 여성도 16.9%가 같은 사유를 언급했다는 점은 시사적이다. 물리적 거리는 심리적 거리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명절 스트레스 조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여성은 ‘시가 가족과의 만남'(29.3%)을, 남성은 ‘아내와의 일정 조율'(30.5%)을 최대 부담으로 꼽았다.
단순한 외부 스트레스가 아니라 부부 간 우선순위 차이와 상호 지지 부족이 명절을 통해 표면화되는 것이다. 실제로 설 연휴가 포함된 1~3월 이혼 신고 비율이 다른 달보다 높게 나타난다.
황혼이혼 급증이 말하는 것

60대 이상 이혼 상담 비중의 폭증은 단순한 수치 변화가 아니다. 1995년 60대 이상 상담자 비율은 남성 2.8%, 여성 1.2%에 불과했다.
2025년 각각 49.1%, 22.1%로 급증한 배경에는 ‘누적된 감정적 거리감’이 있다. 자녀 양육이라는 공동 목표가 사라진 후, 부부는 비로소 관계의 본질과 마주한다.
혼인 지속기간별 이혼 통계도 이를 증명한다. 5~9년차 부부의 이혼 비율이 가장 높지만, 30년 이상 장기 결혼 부부의 이혼도 10% 중반대를 유지하며 완만히 증가하는 추세다.
문제는 시간이 갈등을 치유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오히려 ‘내 편이 아니라는 느낌’이 수십 년간 쌓이면,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한다.
감정 공동체 회복이 유일한 해법

상담 통계가 보여주는 성별 이혼 사유의 비대칭성은 부부 간 감정 소통 방식의 근본적 차이를 반영한다. 여성은 관계의 질(부당 대우 55.1%)을, 남성은 객관적 사유(중대한 사유 56.7%)를 강조한다.
그러나 두 진술 모두 같은 지점을 가리킨다. ‘배우자로부터 이해받지 못한다는 누적된 상실감’이다.
부부 상담 전문가들은 “문제 해결보다 감정적 지지가 먼저”라고 강조한다. “너 왜 그랬어?”가 아니라 “많이 힘들었지?”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장기별거 비율이 남성(36.5%)에서 더 높게 나타나는 것은, 물리적·심리적 거리 증가가 이혼의 선행 지표임을 의미한다. 예방적 부부 상담, 즉 감정 재연결 프로그램이 황혼이혼 방지의 핵심 정책이 될 수 있는 이유다.
작년 5만여 건의 상담 데이터가 말한다. 부부 갈등의 표면은 돈, 육아, 가족 문제로 다양하지만, 본질은 하나다. “당신은 내 편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사라질 때, 30년 결혼도 무너진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말보다 상대를 지지하는 말이 먼저 나와야 하는 이유다. 부부는 문제 해결 공동체이기 전에, 감정 공동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