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80년 만에, 일본 자위대 전투병력이 타국 영해에서 실탄을 발사했다. 4월 20일 개막한 미·필리핀 연례 연합훈련 발리카탄 2026에서 일본은 육상자위대 1,000명을 포함해 총 1,400명이라는 역대 최대 규모의 전투 병력을 파견했다.
훈련 기간은 5월 8일까지 총 19일이며, 미국·필리핀·호주·캐나다·프랑스·뉴질랜드 등 7개국 병력 1만 7,000명 이상이 참여한다. 17개국이 참관국 자격으로 가세하며 사상 최대 규모의 다국적 연합훈련으로 진화했다.
단순한 훈련 규모의 문제가 아니다. 이번 훈련은 동아시아 안보 지형의 판 자체가 바뀌고 있음을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었다.

평화헌법 9조는 껍데기만 남았다
일본 자위대는 이번 훈련에 호위함 이세·이카즈치, 수송함 시모키타 등 함정 3척과 C-130H 수송기, US-2 수륙양용 구난 비행정, 그리고 사거리 약 100km의 88식 지대함 유도탄까지 투입했다. 2012년부터 2025년까지 일본이 재난 응급구조 중심의 비전투 요원만 보냈던 과거와 비교하면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무력 투사다.
이 변화를 법적으로 뒷받침한 것이 바로 2026년 1월 체결된 일·필리핀 상호접근협정(ACSA)이다. 이 협정으로 일본은 필리핀 영토와 영해에 무장 병력을 자유롭게 진입시킬 법적 근거를 확보했다. 전수방위 원칙을 내세우던 헌법 9조의 제약은 사실상 형해화됐고, 일본은 필리핀·호주·영국 등과 연쇄 협정을 맺으며 역외 연합작전 수행의 법적 인프라를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미국의 공백, 일본이 채운다
일본의 이 같은 행보는 치밀하게 계산된 지정학적 기회 포착의 결과다. 미국의 핵심 안보 자산은 현재 이스라엘·이란 분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심각하게 분산된 상태다. 대만 해협과 남중국해를 압박하는 중국을 단독으로 견제하기 벅찬 미국 입장에서, 일본은 사실상 ‘아시아 대리 경찰’ 역할을 자처하며 미국의 암묵적 동의 속에 지역 내 군사 존재감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중국도 즉각 맞불을 놨다. 호위함 이카즈치가 대만 해협을 통과하자 중국 인민해방군 동부전구는 052D형 구축함 바오터우함이 이끄는 편대를 요코아테 수로로 통과시켜 서태평양에서 군사훈련으로 대응했다. 중국 외교부 궈자쿤 대변인은 “지역 평화와 안정을 훼손해서는 안 되며, 제3자의 이익을 표적으로 삼아서도 안 된다”고 4월 20일 공식 경고했다.
한국의 전략적 고민, 더 깊어진다
군사 전문가들은 이번 훈련을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장기적 구조 변화의 신호탄으로 본다. 일본은 2027년까지 방위비를 현재의 약 2배로 증액하고, 장거리 반격 미사일 배치와 사이버·우주 영역 강화를 동시에 추진 중이다. 이미 발리카탄 2024에서 훈련 무대가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군도까지 확장됐고, 2026년엔 다국적 연합으로의 진화가 완성됐다.
반면 한국은 이 같은 다자 역외 연합훈련의 법적·제도적 기반 구축에서 상대적으로 소극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한미동맹과 한미일 안보협력이라는 축은 존재하지만, 대만해협·남중국해 유사시 가장 먼저 연합 전력을 구성하고 지역 통제권을 행사할 국가는 일본이 될 공산이 크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이 중동에 발이 묶인 사이 아시아의 군사 질서가 미·일 연합을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수세적 방어에 머물러 있는 한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근본적인 수정을 요구받는 시점이 바로 지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