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15년 만에 징병제 부활
병력 공백 심각… 모병제론 불가
청년 5만5천명 반발하며 거리로

독일 베를린 거리에 청년 5만 5천명이 쏟아져 나왔다. 최근 독일 정부가 2011년 폐지했던 징병제를 15년 만에 되살리겠다고 나서자, 입대 대상인 청년층이 집단 반발에 나선 것이다.
청년들은 다음 달 5일 90여개 지역에서 전국 학교파업을 예고하며 저항 수위를 높이고 있다. 문제는 이것이 단순한 입대 거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시위를 주도한 ‘징병제 반대 학교파업연대’ 대표 벨라 브라이트너는 “독일군은 부대 내 성추행, 극우 단체활동 등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며 “PTSD 같은 후유증을 겪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독일 국방정책의 대전환 앞에서, 청년층과 정부의 충돌은 유럽 안보 재편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 균열을 드러내고 있다.
병력 7만 7천명 증강, 불가피한 선택인가

독일 정부가 징병제 카드를 꺼낸 배경엔 심각한 병력 공백이 있다.
현재 18만 3천명 수준인 병력을 2035년까지 26만명으로 늘리겠다는 목표다. 문제는 강제 징병 없이 지원자들로만 군대를 구성하는 모병제로는 이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점이다.
실제로 독일군은 2023년 전체 병력의 4분의 1이 6개월 내에 이탈하는 등 심각한 인력난을 겪었다. 18~29세 청년층의 징병제 찬성률은 33%에 불과하다. 선진국 특성상 ‘굳이 군대를 가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다.
이에 독일 정부는 단계적 접근을 택했다. 2026년부터 18세 이상을 대상으로 병역 의사와 능력을 파악하는 온라인 설문을 시작하고, 2027년부터는 18세 남성 전원이 신체검사를 받도록 했다.
모병제를 유지하되 목표 미달 시 최소 6개월 의무복무를 도입한다는 복안이다. 러시아 위협과 미국의 방위비 증액 압박이라는 안보 환경 변화가 정부 입장을 뒷받침한다.
“정치인 자녀는 안 가고 우리만 간다”

청년들의 분노는 단순히 군 복무가 싫어서가 아니다. 독일군에 대한 근본적 불신이 깔려 있다.
모병제 시대에도 독일군 내 네오나치 문제는 심각했다. 극우 단체 활동과 성추행 사건이 반복됐고, 이는 군 복무 경험자들의 PTSD로 이어졌다.
브라이트너는 “징병제가 도입되면 그런 결정을 한 정치인 자녀가 아닌 평범한 가정의 자녀들이 군대에 가거나 전쟁에 참여해야 할 것”이라며 계급적 불평등을 지적했다.
그는 또한 “징병제는 소수의 이익이지 다수, 특히 대다수 젊은이의 이익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역사적 트라우마도 작용한다. 브라이트너는 두 차례 세계대전을 언급하면서 “방어를 명분으로 한 독일의 무장 강화가 결국 침략 전쟁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군사화는 결국 전쟁 준비를 위한 핑계”라고 비판했다.
유럽 안보 재편의 최전선, 독일의 선택

독일의 고민은 유럽 전체의 안보 딜레마를 압축한다. 나토는 2016년 이후 동부 군사배치를 강화하며 발트해와 폴란드 동부에 7개국 3천~4천명 규모의 순환배치를 결정했다.
독일은 이 구조에서 핵심 역할을 맡아야 하지만, 정작 자국 청년들은 군복을 거부하고 있다.
정부는 대규모 전력 공백을 메워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청년층은 “협상과 평화 이니셔티브가 더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맞선다.
브라이트너의 말처럼 “평범한 시민들은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는 정서와, 안보 현실론이 정면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독일의 징병제 부활 시도는 결국 유럽 안보 재편이라는 거대 담론과 개인의 자유, 평화주의라는 가치 사이의 충돌이다. 3월 5일 예정된 전국 학교파업은 이 갈등이 얼마나 깊은지를 보여줄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15년 전 징병제를 폐지하며 “더 이상 대규모 징집군은 필요 없다”던 독일이, 다시 청년들을 군복 안으로 불러들이려는 지금, 유럽 안보의 새 국면이 열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