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 하나의 호칭이 70년 안보의 기틀을 흔들고 있다. 통일부 정동영 장관이 ‘북한’ 대신 그들의 공식 국호인 ‘조선’으로 불러주자고 제안하면서, 대한민국 외교·안보 지형 전반에 거대한 파장이 번지고 있다.
정 장관은 올해 1월 통일부 시무식에서 “이재명 정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체제를 존중한다”고 처음 발언한 데 이어, 3월 25일 통일부·통일연구원 공동 주최 학술회의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한·조 관계’ 등의 표현을 공식 석상에서 사용했다.
4월 29일에는 한국정치학회 주최, 통일부 후원으로 ‘평화공존을 위한 이름 부르기: 북한인가 조선인가’라는 특별 학술회의까지 열렸다.
상호주의의 논리, 대화의 문턱을 낮춰라
정 장관이 꺼내든 ‘조선’ 호칭의 논리적 배경에는 철저한 상호주의가 있다. 과거 북한은 한국을 ‘남조선’ 또는 ‘괴뢰’라 칭했으나, 최근 국제무대와 내부 매체를 통해 ‘대한민국’ 혹은 ‘한국’으로 공식 지칭하기 시작했다.
통일부는 이 변화에 주목해 “북한이 스스로 ‘조선’으로 불리길 원하는 만큼, 공식 국호를 사용하는 것이 상호 존중의 시작”이라는 입장이다. 국제 석상에서 ‘북한’이라는 방향 명사에 항의해 온 북측의 입장을 선제적으로 수용해 얼어붙은 남북 대화의 문턱을 낮추겠다는 외교적 승부수다.

김정은의 ‘두 국가론’ 함정, 선의가 독배로 변하는 순간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선의의 제스처가 치명적인 안보 전략의 자충수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화여대 북한학과 박원곤 교수는 “‘조선’이라고 호칭하는 것은 북한이 원하는 ‘적대적 두 국가론’을 수용하겠다는 의미이며, 사실상 통일 포기 선언이나 마찬가지”라고 직격했다.
핵심은 북한이 호칭을 바꾼 진짜 이유다. 이는 한국을 존중해서가 아니라, 남북 관계를 통일 지향의 ‘특수 관계’에서 ‘철저히 타자화된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전환하려는 김정은의 신(新)안보 전략의 일환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조선’을 공식 호칭으로 수용하는 순간, 우리 스스로 김정은이 파놓은 함정에 걸어 들어가는 결과가 된다.
헌법 제3조와의 정면 충돌, 통일부 존재 이유를 부정하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헌법 위반 논란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3조는 영토를 한반도 전체로 규정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북한은 별개의 국가가 아닌 한반도 북반부를 불법 점거한 반국가단체로 해석된다. 정부 부처가 ‘조선’이라는 별개 국가를 인정하는 호칭을 공식 사용할 경우, 국가 근간인 헌법과 정면 충돌하며 통일부 스스로 그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심각한 모순에 빠지게 된다.
통일부는 현재 “정해진 방침이 없다”며 여론조사와 추가 학술회의를 거쳐 신중히 판단하겠다고 했다. 대화의 문을 열기 위한 호칭 하나가, 70년 분단 질서와 헌법 체계 전체를 뒤흔드는 판도라의 상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정부는 직시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