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도보다리를 나란히 걸으며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로부터 정확히 8년이 지난 2026년 4월 27일, 문재인 전 대통령은 다시 같은 이름의 무대 위에 섰다.
문 전 대통령은 판문점 선언 8주년 기념식(국회 의원회관)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과감하게 마주 앉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북한을 다시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낼 특유의 결단력과 지혜를 발휘해 달라”는 메시지를 직접 던졌다.
하지만 이 호소가 울려 퍼지는 2026년의 한반도는, 8년 전과는 완전히 다른 냉혹한 지정학적 현실 위에 서 있다.

도보다리에서 하노이 노딜, 그리고 북러 밀착까지
2018년 판문점 선언으로 시작된 평화 무드는 2019년 베트남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이 ‘노딜’로 끝나며 빠르게 식어버렸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미국의 대북 제재 완화 요구가 충돌하면서 합의는 성사되지 않았고, 이후 북한은 대화의 문을 걸어 잠갔다.
그 이후의 궤적은 더욱 가파르다. 북한은 핵 무력을 법제화하며 전략적 방향 전환을 공식 선언했고, 미사일 도발의 수위를 지속적으로 끌어올렸다. 2026년 현재, 북한은 러시아와의 노골적인 군사 협력을 통해 재래식 포탄과 첨단 군사 기술을 주고받으며 국제 안보의 핵심 위협으로 자리 잡았다.
8년 전 도보다리의 훈풍과, 지금 북한의 무기 공장이 풀가동되는 현실 사이의 간극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대화론 부상이 한국 안보에 던지는 뼈아픈 딜레마
대화 재개 촉구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그 대화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느냐가 핵심 변수다.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톱다운(Top-down) 방식으로 김정은과 파격적인 합의를 이룰 경우, 협상 테이블의 구도가 문제가 된다.
만약 미국이 본토를 직접 위협하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폐기만을 조건으로 대북 제재를 완화하거나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한다면, 단거리 전술핵 위협을 정면으로 마주한 한국에는 치명적인 결과가 된다. 한국이 미북 간 거대한 직거래 판에서 철저히 소외되는, 이른바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이 현실화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그간 북핵 위협에 맞서 자체 방어 체계를 고도화하고 한미 연합 자산을 바탕으로 한 ‘힘에 의한 억제력’을 구축해 왔다. 그러나 미북 대화론이 급부상하는 순간, 이 억제 전략 전체가 지정학적 재편의 소용돌이 속에 빨려 들어갈 수 있다.
이재명 정부에 던져진 ‘평화 이어달리기’의 무게
문 전 대통령은 이재명 정부를 향해 “역대 정부의 성과는 더욱 단단히 다져 이어가고, 과거의 한계는 지혜롭게 뛰어넘는 평화의 이어달리기를 새로 시작하라”고 주문했다. 과거 하노이 회담 노딜이라는 실패를 교훈 삼아, 대화의 틀을 짜는 방식 자체를 달리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북러 밀착을 끊어내고 극단적인 위기를 막기 위한 대화의 필요성 자체는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대화의 테이블이 한국의 안보를 희생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되지 않도록 철저한 안전장치를 설계하는 것, 이것이 지금 우리 군과 외교 당국이 짊어진 가장 무겁고 시급한 과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