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접 현금을 내고 충전한 전자지갑 잔액이 회원 탈퇴와 동시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면 믿겠는가. 쿠팡이 바로 그 황당한 약관을 2020년 8월부터 5년 넘게 유지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26년 4월 27일, 쿠팡·네이버·컬리·SSG닷컴·지마켓·11번가 등 7개 주요 오픈마켓이 운영해 온 불공정 약관 11건을 적발하고 시정에 나섰다.
적발 내용 중 가장 충격적인 것은 쿠팡의 쿠페이머니 소멸 조항으로, 회원 탈퇴 시 남은 쿠팡캐시·쿠페이머니 잔액을 환불 절차 없이 전액 소멸시키는 방식이었다.
이 조항의 핵심 문제는 무상 지급 포인트뿐 아니라, 소비자가 현금을 직접 지불하고 충전한 유상 전자지급수단까지 예외 없이 빼앗았다는 점이다.
공정위는 계약 해지 시 잔여 가치를 반환해야 한다는 원상회복 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했으며, 쿠팡은 이번 지적을 받고서야 무상 지급 포인트에만 소멸을 한정하는 방향으로 약관 개정 절차에 들어갔다.
입점 자영업자 옥죄는 ‘정산 보류’ 함정
소비자뿐 아니라 플랫폼을 믿고 입점한 자영업자들의 숨통도 불공정 약관이 조이고 있었다. 쿠팡은 신용카드 부당 사용 확인을 이유로 최대 60일간 결제 대금 지급을 보류할 수 있는 조항을 운영했으며, 컬리와 11번가는 환불·분쟁 대비 명목으로 정산을 유예하면서 해당 기간 이자조차 지급하지 않는 조건을 달았다.

이 같은 정산 보류 조항은 작은 규모의 입점 업체일수록 자금 흐름에 직접적인 타격을 준다. 플랫폼의 귀책사유가 불분명한 상황에서도 판매자가 모든 자금 공백을 떠안는 구조는 사실상 불균형한 갑을 관계를 약관으로 고착화시킨 셈이다.
해킹 피해조차 소비자 책임으로 돌린 ‘면책 조항’
방대한 고객 데이터를 보유한 대형 플랫폼들이 개인정보 유출 책임을 소비자에게 교묘히 전가한 정황도 이번 조사에서 다수 포착됐다. 쿠팡은 제3자의 불법 서버 접속이나 스파이웨어 유포로 발생한 손해에 일절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명시했고, 네이버는 판매 회원의 로그인 정보 유출로 발생한 피해를 전적으로 회원 책임으로 규정했다.
지마켓 역시 특정 판매자가 취급 중인 다른 회원의 개인정보가 침해된 경우 회사의 고의·과실 여부와 무관하게 완전히 면책된다는 조항을 유지해 왔다. 공정위는 이 같은 조항들이 해킹 사고 시 사업자 스스로 고의·과실이 없음을 입증해야 한다는 개인정보보호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충돌한다고 판단했다.
5년 방치된 약관, 이번엔 달라질까
이번 공정위 제재는 소비자와 입점 사업자 모두를 옥죈 플랫폼의 불공정 관행이 얼마나 광범위하고 오래 지속됐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7개 플랫폼·11건의 약관이 5년 이상 묵인된 사실은 사후 감시 체계의 구조적 허점을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약관 개정이 실질적인 소비자 보호로 이어지려면 형식적 문구 수정이 아닌 운영 방식 전반의 투명한 변화가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