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식 물가 치솟는데 술값만 거꾸로
26년 만의 마이너스 행진… 왜?

“소맥이 2천 원? 이게 진짜라고?”
김밥 한 줄, 삼겹살 한 접시도 비싸다며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고 있는 와중에, 서울 시내 곳곳 식당들 앞에 붙은 ‘소주·맥주 2000원’ 현수막이 눈길을 끌고 있다.
외식 물가가 3% 넘게 치솟는 고물가 시대에서, 소주와 맥주 가격은 유일하게 떨어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외식용 소주와 맥주 가격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연속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소주는 7개월째, 맥주는 4개월째 마이너스 행진이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없던 역주행으로, 무려 26년 만의 일이다.
그 배경에는 자영업자들의 절박함이 있다. 당장 매출을 끌어올리기 위해 마진을 줄이고 술값을 내리는 전략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IMF 때도 안 그랬는데… 26년 만의 역주행

2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5년 3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외식용 소주 가격은 1년 전보다 1.3% 떨어졌다.
이는 지난해 9월부터 이어진 7개월 연속 하락으로, 외식용 맥주 가격도 0.7% 내려갔다.
통계가 작성된 이래 외식 소주 가격이 이렇게 오랜 기간 하락한 건 단 한 번, 2005년 7월뿐이다. 외식용 맥주 가격이 4개월 연속 떨어진 건 1999년 이후 26년 만에 처음이다.
놀라운 것은 술값만이 하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같은 기간 무(86.4%), 배추(49.7%), 양파(26.9%) 등 주요 채소류는 물론, 김(32.8%), 축산물(3.1%)과 수산물(4.9%)까지 줄줄이 가격이 올랐다.

가공식품 물가 역시 3.6% 상승해 2023년 12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커피, 빵, 햄 등 필수 식품은 출고가 인상 여파로 소비자 부담이 커졌다.
그 와중에 술값만 하락한 이유는 명확하다. 내수 침체로 인한 자영업자의 위기 대응 전략이다.
메인 메뉴는 원재료값과 인건비 때문에 가격을 쉽게 낮출 수 없다. 대신 마진이 상대적으로 높아 가격 조정이 가능한 주류를 활용해 ‘할인 마케팅’에 나선 것이다.
한 프랜차이즈 관계자는 “예전엔 술값에 마진을 붙여 이윤을 남겼다면, 요즘은 손님을 끌어들이기 위해 마진을 줄여서라도 싸게 파는 게 유행”이라고 말했다.
“이러다 다 죽는다”… 소상공인의 딜레마

식당과 술집이 몰린 거리에는 ‘소주·맥주 2000원’ 배너를 내건 고깃집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업계는 이를 ‘박리다매 전략’이라 부른다. ‘삼겹살에 소주 한잔도 부담’이라는 소비자 심리를 겨냥해, 마진 없이 술을 팔아 손님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전략이 지속 가능하냐는 의문이 나온다. 한 식당 운영자는 “술값까지 낮추면 생존이 어려워진다. 하지만 옆 가게가 가격을 낮추면 나도 안 할 수 없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요식업계는 ‘죄수의 딜레마’에 빠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 번 시작된 가격 인하 경쟁은 상권 전체를 흔들 수 있다.
요식업계 관계자는 “주류 가격 하락이 물가지수에 반영됐다는 건, 이런 할인 경쟁이 얼마나 확산됐는지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외식업계는 주류 가격 인하 흐름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지만, 과도한 가격 경쟁이 자영업자의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