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년 전 총구를 겨눴던 적군의 유해가 다시 외교의 언어가 됐다. 한국 정부가 2026년 4월 22일, 한국전쟁 당시 전사한 중국군 유해를 중국 측에 인도하는 차관급 공개행사를 3년 만에 재개했다.
2024년 11차, 2025년 12차 송환은 모두 공개 행사 없이 조용히 진행됐다. 이번 재개가 단순한 의전 복원이 아닌, 동북아 신냉전 구도 속에서 한국이 치밀하게 계산한 외교적 수로 주목받는 이유다.
이번 행사에는 중국 공군의 Y-20B 대형 수송기가 투입됐다. Y-20B는 기존 Y-20A를 개량한 모델로, 중국 측이 이 행사에 최신 군용 수송기를 배치했다는 사실 자체가 베이징의 정치적 무게감을 방증한다.

2014년 시작된 ‘우호의 상징’, 3년 공백 후 다시 무대 위로
중국군 유해 송환은 2014년 양국 우호의 상징으로 첫발을 내디딘 이후, 한국군이 정중한 예우를 갖춰 유해를 중국 수송기에 인계하는 방식으로 매년 이어졌다. 그러나 2024년과 2025년 두 차례 연속 공개 행사가 생략되면서, 양국 고위급이 함께하는 공식 인도식은 사실상 중단 상태에 놓였다.
이번 재개는 과거의 상흔을 매개로 대중국 소통 채널을 다시 부각하려는 한국 정부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전쟁의 기억을 외교 자원으로 전환하는 ‘전쟁 기억 외교’가 3년의 침묵을 깨고 무대에 다시 올랐다.
중국의 ‘항미원조’ 감성을 파고드는 계산된 외교
중국 내에서 한국전쟁, 즉 ‘항미원조’ 전쟁의 기억은 단순한 역사가 아니다. 시진핑 체제 아래 애국심 결집의 핵심 기제로 적극 활용되고 있으며, 전사자 유해는 그 서사의 중심에 있다. 한국이 정중한 예우로 유해를 돌려주는 행위는, 중국 지도부와 대중의 감정적 장벽을 낮추는 데 어떤 외교 수사보다 강한 설득력을 발휘한다.

안보 전문가들은 이번 공개행사 재개 시점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본다. 현재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와 전방위 군사동맹을 강화하고 무기를 공급하며, 한반도 도발 수위를 극단적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북·러 밀착 속 중국의 틈새를 파고드는 완충 전략
만약 중국이 북·러 밀착 구도에 적극적으로 합류하며 군사·외교적 결속을 강화한다면, 한국의 안보 부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한국이 선제적으로 인도적 명분을 제공하는 것은, 북·러의 급격한 밀착 속도에 부담을 느끼는 중국의 미묘한 전략적 거리를 활용하는 영리한 지정학적 포석이 될 수 있다.
중국과의 외교적 공간을 넓혀둠으로써 한반도 유사시 중국이 북한의 극단적 도발을 맹목적으로 지지하지 않도록 견제하는 완충 지대를 확보하는 셈이다. 70년 전의 전사자 유해가, 2026년 동북아 패권 경쟁의 한복판에서 살아 있는 외교 자산으로 작동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