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세계가 예산 구조를 뜯어고치며 다시 무장하고 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2025년 전 세계 군사비는 2조 8,870억 달러로 11년 연속 증가했으며, GDP 대비 비중은 2.5%로 2009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의 상황은 다르다. 정부가 편성한 26조 2,000억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에서 가장 큰 항목은 방공망도 탄약도 아닌 고유가 피해지원금이다. 연간 국방예산 66조 3,000억 원의 약 40%에 달하는 막대한 재원이 투입되지만, 즉응 안보 예산은 사실상 보이지 않는다.
2026년 국방예산을 8.2% 증액했다는 정부의 반론이 있지만, 본예산이 장기 전력 증강 계획이라면 추경은 지금 당장 터진 위기에 대한 즉각 대응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두 개념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주변국의 군비 팽창 속도, 숫자가 말한다
한국의 국방비 증가율이 2.6%에 머문 사이, 일본은 622억 달러를 집행하며 9.7% 증가해 1958년 이후 최고 수준의 GDP 대비 군사비 비중을 찍었다. 대만은 182억 달러로 14% 급증하며 1988년 이후 가장 큰 폭의 국방비 증액을 단행했고, 중국은 3,360억 달러를 전력 증강에 쏟아붓고 있다.
지역 전체로 봐도 아시아·오세아니아의 군사비는 8.1% 증가해 2009년 이후 최대 연간 증가율을 기록했다. 이 속도 차이는 단순한 숫자가 아닌 전략적 격차로 직결된다.
독일은 헌법을 고쳤고, 호주는 10년 계획을 새로 짰다
독일은 헌법상 부채 제한 장치를 사실상 예외로 두면서까지 2026년 총 국방지출을 1,172억 유로 규모로 끌어올렸다. 호주는 잠수함, 장거리 타격, 무인 체계, 대드론 등 지속전 능력을 전면에 내세우며 향후 10년간 4,250억 호주달러를 투입하는 투자표를 새로 짰다.

대만은 400억 달러 규모의 특별 예산을 두고 정치권이 충돌할 만큼 다급하게 움직이고 있고, 일본 방위성도 탄약 확보와 방위시설 회복력을 핵심 예산 항목으로 올렸다. SIPRI 연구원 다 실바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매우 많은 분쟁이 있으며, 1년 안에 이 증가 추세를 뒤집을 만큼 상황이 개선되기는 매우 어렵다”고 진단했다.
추경 5%만 떼어냈어도 1조 3,000억 원이었다
전쟁은 기름값만 흔드는 것이 아니라 탄약 재고, 항만·비활주로 복구력, 대드론 방어 체계, 사이버 방어망을 동시에 시험한다. 이번 추경의 단 5%만 안보형 회복력 예산으로 전환했어도 1조 3,000억 원이 넘는 재원을 즉시 확보할 수 있었다.
그 돈이면 전쟁 첫날 파괴된 활주로를 즉각 복구하고, 자폭 드론을 막아내며, 끊어진 부품 공급망 속에서도 군을 움직이게 할 최소한의 방파제를 세울 수 있었다. 세계는 이미 예산으로 전쟁 준비를 증명하고 있으며, 한국이 다음 위기 앞에 던져야 할 질문은 ‘얼마를 나눠줄 것인가’가 아니라 ‘전쟁 첫 72시간을 우리는 얼마나 버틸 수 있는가’여야 한다.



















